학교폭력 해법은 ①'왕따''빵셔틀' 용어부터 문제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되다시피 한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경종이 울리고 있다.
'왕따'와 같이 폭력과 차별을 내포하는 용어가 행위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되는 현실은 '따돌림' 문제를 대하는 학생들과 기성세대의 감각이 무뎌진 증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중학생이 자살하는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우선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은어부터 관심을 가지고 사태를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는 왕따뿐만 아니라 '빵셔틀'(빵 심부름하는 것), '일진따'(왕따 중의 왕따), '신발셔틀'(신발가방 들어주는 것) 등의 용어들이 일상어로 사용된다.
중학생 이모(14)양은 "왕따는 초등학교 때부터 평소 대화 중 일상적으로 쓰던 말"이라며 "실제 왕따 현상이 일어나는 것과 상관없이 생활에서 왕따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 전모(14)군은 "왕따, 일진따 등의 말은 친한 친구들끼리 장난삼아 오히려 많이 쓴다. 진짜 왕따 당하는 애한테는 그런 용어조차 쓰지 않고 말을 안 걸거나 욕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은어의 일상화' 현상은 따돌림 현상이 10대들의 보편적 문화현상이나 키워드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과 교수는 "용어라는 것은 어떤 현상을 이야기하고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같이 특정 집단화가 됐을때 자신들끼리만 통용할 수 있는 언어, 즉 '은어'를 만든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왕따, 빵셔틀 등 용어는 아이들 사이에서 누군가 괴롭히는 쪽이 있고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 있는 상황 속에서 나온 용어지만, 이런 언어를 통해 아이들 생활이 밖으로 노출되면서 어른들은 아이들 사회에 존재하는 가학성 등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청소년의 55%가 빵셔틀을 학교폭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빵셔틀을 뺀 일반적인 괴롭힘과 왕따가 학교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각각 42%, 17%에 달했다. 용어의 일상화가 차별의 일상화로 이어짐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학생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은어 사용을 교사나 부모가 적극적으로 저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 박모(27.여)씨는 "왕따 등의 은어 사용 빈도는 학교나 가정 등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에 따라 크게 다르다. 특히 가정에서 부모의 통제에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은어를 쓰지 못하게 강제한다고 해서 학교 폭력 문제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사태가 발생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왕따를 '집단 따돌림'으로 순화해 표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원인이 되는 현상이 없어져야 은어가 기능할 근거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여고 2학년생 최모(17)양은 "흡연교육이나 성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학생들의 흡연, 성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듯 은어들에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고 해서 학교폭력이 쉽게 개선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성경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교 폭력이나 언어사용 모두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며 "도덕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감정의 표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언어 사용을 자제시키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의 감정 표출을 막아 부작용을 가져 올 수 있다"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거나 인생의 지향점으로 삼을 만한 모델을 찾아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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