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위신탓 소극대응 피해학생 되레 위축 "강제전학 조치도 못해"
학부모 이모(44'여)씨는 3년 전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이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학교에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건 가해학생들의 '옆 반 이동 조치'였다. 이 씨는 "'그 학생들을 전학시키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에 양해해달라'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 결국 내 아이를 다른 학교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며 "최근 대구에서 벌어진 학생 자살 사건도 학교 측의 이런 소극적인 대응에 큰 원인이 있다"고 했다. 관계기사 3'4면
동급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A군 사건의 피해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청소년들의 '또래 폭력'에 대한 교육 당국과 학교의 소극적인 대응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 폭력을 외면하게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폭력 사건이 외부로 새 나가면 위신이 떨어진다는 학교 책임자의 인식, 관리 소홀 책임부터 물으려드는 교육당국의 대응이 또래 폭력을 방관케 한다는 것.
또래 폭력에 대한 학교나 교육당국의 대응은 피해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수성구 한 중학생인 최모(14) 군은 "집이 부유하다는 것을 안 학교 친구들에게 매일 3만원씩 뜯긴다. 학교 선생님이나 상담센터에 상담할 생각이 없다. 괴롭히는 친구가 전학가지 않는 이상 문제가 해결될 일이 없기 때문"이라며 걱정했다. 중학생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엄연한 폭력을 장난쯤으로 여기는 가해학생들도 문제이지만, 별일 아닌 일로 쉬쉬하려는 학교 측의 태도에도 화가 난다"며 "이런 식의 소극적인 대응이 가해학생이 당당하고 오히려 피해학생이 불안해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마다 설치된 상담실은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대구 서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이모(15) 군은 "학생들끼리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교사들이 빨리 해결하고 감추는 데만 급급한다. 이 때문에 사소한 학교 폭력 사건은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달서구의 한 중학생 박모(16) 군은 "학교에 상담소가 있지만 학교 폭력이나 왕따 관련 고민이 있어도 절대 찾지 않는다. 괜히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가 폭력서클 학생들에게 찍힐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사들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교권 추락' 때문에 청소년들의 학교 폭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특히 학교 폭력 사건의 정확한 조사보다 외부로 알려지면 문책부터 하려는 교육당국의 대응이 교사들을 위축시킨다는 것.
한 교사는 25일 전교조대구지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지금처럼 생활지도를 교사들에게만 맡겨서는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뿐이다.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하나로 힘을 합쳐 아이들 생활지도에 나서야 한다"며 "학부모 소환제로 부적응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법적으로 책임을 가지게 하고, 정학제 실시로 부적응학생들을 일정기간 격리하여 대체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교사는 "학교지킴이들이 학교마다 배치돼 있지만 등'하교 지도 수준에 그칠 뿐, 이들이 학교 폭력 예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당국도 학교 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보다 강한 제재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시 교육청 한 관계자는 "중학교 과정까지 의무교육이다 보니 퇴학은 물론 강제전학 조치도 내릴 수 없다. 최소한 강제전학 조치는 인정돼야 학생들이 경각심을 가질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소년원 외에 학교 폭력 가해 학생들을 받는 별도의 교육 기관을 신설, 심리치료 등 정서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최병고'채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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