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최중근의 세상 내시경] 미각의 수준

입력 2011-12-22 14:26:43

"맛도 아는 만큼 보인다!" 그렇다.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맛의 다양한 매력에 대해 잘 알 것이다. 먹는 즐거움을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받아들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미각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만큼 미각을 향한 대중의 욕망도 강해졌고 음식과 함께 관계와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이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가 됐다. 그런데 항상 이 '트렌드'라는 것이 말썽이다. 거품이 껴 있다.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사회적 합의는 언제든지 왜곡의 여지를 남긴다.

그런 맥락에서 맛집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는 미각의 본질을 되새기게 만드는, 그동안 맛에 휘둘려 부화뇌동했던 부끄러움을 돌아보게 만드는 준엄함이 있는 영화다. 그리고 영화는 대충 어림짐작으로 남겨두고픈, 굳이 꺼내 들춰보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라고 다그친다.

돈을 받고 음식점을 맛집으로 둔갑시켜 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그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브로커, 외주 제작사가 뒷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메이저 방송사, 그리고 아무 비판 없이 맛집 방송을 수용하는 우리들에게 대놓고 "천박하다!"고 "소비자의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호통을 친다.

사실 이 영화 이전의 내 미각도 크게 남다를 바 없었음을 고백한다. 미각 수준이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미각이라고 할 만한 것조차 없었다. 오죽하면 영화에 나오는 캐비어 삼겹살이 방송에 30번도 더 넘게 나왔다는데 한 번도 본 적 없으니 어지간히 무딘 사람임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일반 블로거나 네티즌들도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후기를 올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텔레비전이 인정한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는 허영심에 중독된 우리 음식문화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은 1년에 9천여 개 음식점이 맛집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맛집들이 내놓고 있는 요리들을 평가하는 것도 하나같이 획일적이다. 맛이 없어도 맛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 언제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사람(연예인)이 보이는 천편일률적인 맛 표현들 모두 문제 제기가 없고 비판의식이 사라진 사회에 대한 두려움도 만만치 않다.

영화를 만든 김재환 감독은 "맛은 미디어와 인간 욕망의 교차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 음식점이라면 모두 가질 수 있는 대박에 대한 환상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청자, 비평 없는 미디어 문화, 절대 성역으로 군림하는 방송사에 대한 직격탄을 날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첫걸음은 작게는 맛집이지만 크게는 미디어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주방은 명령과 복종으로 움직이는 '군대'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요리업계가 명령과 복종이라는 관계가 뚜렷해서 오랫동안 '전쟁' 같은 주방에서 살아남은 셰프에게는 나름의 내공이 쌓여 있다. 결국 이런 내공이 '타협하지 않는 고집'을 만들어낸다.

그런 고집이 만들어낸 창작품은 당연히 억지로 알릴 필요도 없이 손님들이 절로 찾아온다. 먹어 보고 좋으면 다시 찾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맛이라는 일차원 세계가 이 정도인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구미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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