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기행] (52) 구미 금오서원 녹색길

입력 2011-12-21 07:08:57

소금장수 삼베옷에 소금땀 흠뻑 젖어 한걸음…한걸음…

구미 선산읍 원리에 새롭게 단장되는 금오서원 녹색길.
구미 선산읍 원리에 새롭게 단장되는 금오서원 녹색길.
천연기념물 제357호로 지정된 구미 선산읍 독동리 반송.
천연기념물 제357호로 지정된 구미 선산읍 독동리 반송.
남산 정상에 있던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 봉수대.
남산 정상에 있던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 봉수대.

옛길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 등 다양한 삶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수백여년이 흐른 지금, 숱한 이야기와 삶이 스며든 길은 사라지기도 하고 새롭게 다듬어져 또 다른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해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자국이 차곡차곡 쌓여 길이 생긴다. 이 길을 통해 사람들이 통행을 하고 소통을 하며, 물품이 이동했다.

구미 선산읍 원리 금오서원 녹색길은 요즘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서 1950년대 초반까지 소금 배의 정류장으로 유명했던 강창나루를 품고 있는 이 길은 수변공간 활용형으로 지역 문화자원과 함께 어우러진 트레킹 코스로 조성이 되고 있다.

민초들의 애환과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옛길은 이제 등산객들과 산악용 자전거를 타는 참살이 족(族)들의 레포츠 '통로'로 그 역할을 넘겨 주고 있는 것이다.

금오서원은 경사진 곳에서 연꽃이 물에 이르러 있다는 전형적인 '연화도수형'(蓮花到水形) 명당으로 꼽히는 남산에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과 감천의 젖줄을 머금고 500여 년을 이어온 곳이다. 그 역사 속 길을 더듬어 걸어본다.

◆금오서원을 품은 명당 남산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된 낙동강 물은 안동, 상주를 거쳐 선산읍의 넓은 품으로 스며든다. 김천 수도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은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쉼 없이 굽이치면서 선산읍 원리 남산 앞에서 낙동강 물과 합류한다. 따라서 선산읍 원리는 동쪽과 남쪽으로 각각 낙동강과 감천, 북쪽과 서쪽으로는 남산에 둘러싸인 형국이므로 명당자리로 유명하다.

남산은 나지막하게 솟은 봉우리이며 해발이 170여m 남짓하지만 남'서쪽으로는 가파르고 북'동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금오서원은 남산 남쪽 방향 가파른 산 밑 기슭에 세워져 금오산을 바라보고 있다.

금오서원의 툇마루 정학당(正學堂)에 올라 바라본 전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감천의 은은한 물빛들이 햇볕에 반짝이고, 넓게 펼쳐진 고아읍 들판은 곡창지대로서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등 가슴까지 탁 트이게 한다. 이곳에 앉아 "맹자왈, 공자왈" 했을 옛 선비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가슴이 와 닿는다.

게다가 이곳은 지금에 와서도 한 번쯤 다녀가지 않으면 건축학도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당초 금오서원은 1570년 야은 길재를 모시기 위해 금오산 기슭에 세웠다. 야은은 고려왕조가 쇠락할 무렵 고향 선산으로 낙향해 금오산 밑에 채미정을 짓고 일생을 후학 교육에만 몰두하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인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서원은 불탔고, 왜란 후 서원을 재건하는 위치를 두고 영남학파 선비들은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선비들은 금오서원 복원 위치로 '금오산은 외진 곳이어서 서원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앞쪽으로 감천이 흐르고 뒤쪽으로 남산이 보호해주는 명당인 남산 기슭이 적지'라고 왕에게 청했다. 이곳은 야은 출생지인 선산군 봉계리(현 고아읍 봉한리)를 보고 남향으로 지을 수 있는 위치라는 점도 이전 복원지 장점으로 꼽혔다.

야은의 고향마을을 바라다보며 60여 가구가 빼곡히 들어선 지역이 바로 금오서원과 어우러진 서원마을이다.

남산 기슭으로 옮겨진 금오서원은 영남학파 선비들을 배향하면서 성리학의 연수(淵藪)로 불렸다.

성리학의 대통을 이어받은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 등 5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또 선비들의 숱한 고뇌와 자존심, 학맥과 문중의 대립 등 역사적 흔적이 묻어 있는 서원이다.

서원마을 옆 강창마을에는 구미지역 3대 나루였던 강정나루, 비산나루와 함께 강창나루가 있었던 군이다.

강창나루는 부산에서 소금을 싣고 와 김천과 상주, 안동으로 보냈다. 일제 강점기에서 1950년대 초반까지 소금 배의 정류장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1980년대 후반까지는 낙동강을 건너고 고기를 잡는 나룻배의 정류장 역할도 했다.

이 길을 통해 김천과 상주'안동 지역을 소금을 비롯해 다양한 물품들을 실어 날랐다.

낙동강이 조선시대 소금 배의 역사를 담았다면, 남산은 조선시대 봉수대의 흔적을 안고 있다.

남산은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산 정상에는 아직까지 조선시대에 활약을 했던 봉수대의 흔적들인 돌무더기들이 남이 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세종 때 정한 5곳의 봉수대 기점 중 제2선인 동래선에 속해 있었다. 구미 임수동의 건대산, 해평면의 석현, 칠곡 약목면의 박집산에서 올라오는 봉수신호를 받아 김천 개령면의 감문산, 상주 회룡산 봉수대로 전달해 서울 남산까지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산꼭대기에 띠를 두른 모양으로 설치되었는데 현재는 봉돈(烽墩'봉화 연기를 피우는 돈대) 1기만 남아 있다.

돌을 쌓아 올려 만든 봉돈의 높이는 1.8m, 상부직경은 2.6m, 하부직경은 4.3m이다. 봉수대를 둘러싼 축조물의 길이는 85m가량으로 석축이 47m, 토석축이 38m에 이른다. 석축은 거의 붕괴된 상태이지만 토석축은 원형이 유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어느 순간부터 봉수대 바로 옆에 개인 묘지가 들어서 봉수대 복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에 안타깝다. 게다가 남산 봉수대는 문화재로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남산 중턱은 30년 전까지 수령 300년 된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다. 1970년대 동신제가 사라지기 전까지 마을 제사의 대상이 됐던 당산나무였다.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고 미신타파 분위기 속에서 동신제는 폐지됐고, 주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소나무는 1981년쯤 누군가에 의해 잘려나갔다.

하지만 이 자리에 새 소나무가 자랐고, 현재 수령이 30년쯤 된 솔 숲을 형성해 호젓한 오솔길로 온갖 야생화와 나무들이 수수한 자태를 자랑하는 등 연인과 손잡고 걷고 싶은 산책로 딱이다.

◆새롭게 조성되는 금오서원 녹색길

남산 정상에 올라가서 바라보면 남동쪽으로 멀리 태조산과 낙동강이 보이고, 지척에는 4대강 사업의 구미보가 웅장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남산 정상 봉수대로 올라가는 길은 네 갈래이다. 이 길이 금오서원 녹색길이다.

금오서원을 이용하는 길과 구미보 통합관리센터를 거쳐서 올라가는 길. 구미보에서 바로 올라가는 길과 남산 주차장을 이용하는 길이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1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내년까지 남산 일대에 금오서원 녹색길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금오서원 녹색길은 낙동강 제8경(두루미 군무)과 지역의 문화자원인 금오서원과 봉황대, 독동의 반송, 낙산고분군, (사)영남유교문화진흥원 등을 연계한 트레킹 코스로 조성된다.

1코스는 금오서원 주차장을 출발해 남산 제1봉수대와 제1전망대를 거쳐 통합관리센터로 내려와 낙동강변을 따라 3.2㎞를 걷는다.

2코스는 남산 주차장에서 제2전망대를 거쳐 봉수대와 제1전망대에서 구미보 방향으로 바로 내려오는 2.5㎞ 구간이다.

금오서원 뒤편으로 올라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완만한 경사로 돼 있어 산책로는 안성맞춤이다.

남산을 뒤로 하고 선산 방향으로 30여분간 걸으면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의 반송이 떡 버티고 서 있다. 반송은 1988년 4월 천연기념물 제357호로 지정이 됐다. 수령이 4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는 반송은 높이 13m로 동서로 19.2m, 남북으로 20.2m로 길게 갈라져 있다. 반송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줄기 밑부분에서 굵은 곁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수형이 우산처럼 다복한 것이 특징이다.

반송은 인가가 없는 농로 옆에서 마을이 터를 잡기 전부터 자라온 고립목(孤立木)이다.

반송 인근에는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멋을 한껏 살린 한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은 노진환 영남유교문화진흥원장이 전액 사비를 들여 다양한 유교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한옥촌 조성과 한국학 연구를 위한 관련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노 원장은 선산의 명문 유교 집안 출신이다. 조선시대 성리학 특히 영남사림파의 고문헌 등을 수집' 전시'보관하고 성리학과 선비문화를 발전'진흥시키기 위해서 이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은 국립 규장각, 안동의 도립 한국국학진흥원과 성격을 같이 한다. 임진왜란과 항일독립운동 자료도 전시해 선비들의 삶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

노 원장이 소유하고 있는 전적은 모두 필사원본으로 조선후기와 한말의 정치'경제'사회'법제사 및 재지사족(在地士族)들의 범절과 서예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이다.

구미'전병용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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