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벌이 없으면 죄도 없다

입력 2011-12-13 10:59:11

'벌이 없으면 죄도 없다.' 동급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초등학생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자신만의 심판을 준비하며 읊조리는 말이다. 경찰지구대를 찾아가니 아이들은 형사미성년자라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하고 그 부모들도 책임이 없다 한다. 학교를 찾았더니 교장은 신의 말씀을 전하며 그에게 하얀 봉투를 내민다. '형제님, 원수를 사랑하라는 거룩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어린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모르고 행한 일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뭐라 하셨습니까? 주여,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희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도 모르나이다(…).' 이미 가스가 끊기고 조만간 전기와 수도가 끊길 재개발지역에서 아픈 손녀를 둔 눈이 멀어가는 당뇨병 환자인 그에게 600만 원이 든 하얀 봉투는 구원의 빛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또한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요 고귀한 '용서'이며 법질서에 순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구원의 빛을 두고 그는 이렇게 묻는다. '아버지,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서 행운의 숫자가 나오면 이 돈은 제 것입니다.' 그리고 눈이 모두 육인 주사위와 눈이 모두 일인 주사위를 던진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눈이 여섯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눈이 닳아서 일이 지워져 있었다.

이제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심판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만의 심판이란 것이 제대로일 리 만무하다. 학생 신상카드를 훔치고 지도를 훔치고 주차 스티커 발급 대장을 훔쳐 알아낸 그들의 차에 자체 제작 소주병 폭탄 투척. 그러느라 전기마저 끊긴 방에서 손녀는 몸이 불덩이고 그는 퀵서비스 일마저 끊긴 채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는 거리로 내몰린다. 성냥팔이 소녀만큼이나 우울한 이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김경욱의 단편이다.

일명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의 형량이 대폭 상향되었다. 올해는 영화 '도가니'로 전국이 뜨거웠다. 아동이나 장애 여성 대상 성범죄에 관한 한 법조문상으로는 우리에게도 '무관용(zero tolerance) 정책'이 견지되고 있다 할 것이다. 어떤 건물에 유리창 하나가 깨진 채 방치되어 있다면, 머지않아 그 건물의 유리창은 모두 깨질 것이라는 일명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바탕으로 1990년대 뉴욕에서 행해진 '무관용 정책'은, 방치된 무질서는 또 다른 무질서를 낳고 이는 결국 범죄를 양산하게 되므로 무질서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엄격하게 실행한 결과 살인은 60%, 총범죄 수도 43%나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이때 경찰에 의한 소수민족과 유색인종에 대한 살해도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무관용 정책'은 바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죄와 벌이라는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그의 심판을 이해는 하지만 정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일까? 되물을 이들도 많을 것이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꼴리니꼬프에게도 이는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모든 사람에게 해가 되는 병든 노파, 그 벌레만도 못한 목숨을 없애고 얻게 될 수천만 생명의 구원. 이는 참으로 간단한 산수였고,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까닭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초인으로서, 인류 전체의 선(善)을 증가시키는 그 위대(?)한 일을 하고도 심한 인간적 갈등에 휩싸인다. 물론 여기에는 그가 오로지 자신의 완전범죄만을 위해 살해한 노파의 동생 리자베따가 있고 이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의 탁월한 소설적 장치인 것이지만 문제는 리자베따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처한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아둔한 독자의 눈에는 갈수록 물음만 깊어지고 아무런 해답도 보이지 않는데 작가는 갑자기 쏘냐의 사랑을, 구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감히 도스토예프스키 흉내를 낸다고 질타와 조롱의 대상이 될지언정 새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모두에게 생뚱맞은 사랑에 관한 말을 전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현명한 그대들은 해답도, 구원도 모두 읽어내기를 또한 감히 바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ㅁ'의 모서리가 닳는 것,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김계희/변호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