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집단 훔쳐보기

입력 2011-12-10 07:29:57

중학교 1학년 때 대구 변두리에 살았는데 앞길에 목욕탕이 있었다. 보통 1층에는 여탕, 2층에는 남탕이 있는데 건물 밖에서 보면 여탕 탈의실에 창문이 하나 달려 있었다. 창문 높이가 2m 남짓이라 창문 모서리를 잡고 턱걸이하면 내부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네 친구 4, 5명이 어느 날 저녁 용기를 내 악동 짓을 벌이기로 했다. 가장 용감한(?) 친구가 먼저 창문에 매달렸는데 탈의실 안에서 "야!" 하며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우르르 도망쳐 창피는 면했지만, 모두 실패한 것을 두고 아쉬워했다. 얼마 뒤 목욕탕을 지나가다 창문에 철조망이 칭칭 감겨 있는 것을 보고는 모두 허탈해했던 기억이 난다. 성적 호기심으로 충만하던 때의 짓거리이지만, 어린 시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뻔한 사건이었다.

인간은 원래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관음증이라는 말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한 영화감독이었다. '서스펜스의 대가'였던 앨프리드 히치콕(1899~1980)이다. 예쁜 그레이스 켈리가 출연한 이창(Rear window'1954년)이라는 영화가 그 시작이다. 다리를 다친 사진기자가 카메라와 쌍안경으로 앞집들을 엿보고 있다가 우연히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그가 감독한 '이창'과 '현기증'(1958년), 사이코(1960년)를 묶어 '관음증 3부작'으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 고정시킨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친밀감을 느끼는 영화를 볼 때는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관음증 환자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훔쳐보기를 영화에 도입한 감독이었다.

훔쳐보기는 도덕적으로는 지탄받을 짓이지만, 요즘 세상에는 누구 하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의학적으로 6개월 이상 아무 일 못하고 훔쳐보기에 골몰할 경우 환자라고는 하지만, 일상적으로 반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요즘 말이 많은 A씨 동영상을 놓고도 인터넷으로, 휴대폰으로 퍼 나르기에 정신없는 이들이 너무 많다. 보지 않으면 마치 유행에 뒤지는 줄 알고 찾아나서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며칠 만에 수백만 명 이상 봤다는 보도까지 있으니 놀랄 일이다. 한 여성의 인생에 대한 고려나 배려는 전혀 관심 밖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미친 세상에서는 미친 사람만이 정상이다"라고 내뱉은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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