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通]교수·감독 변신, 이태현 전 천하장사

입력 2011-12-10 07:35:11

교수 감독 어렵죠! 가르치다 보면 한번씩 모래판에 뛰어들고 싶죠

별명이
별명이 '장난꾸러기'답게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이태현 교수.
씨름
'제자들과도 한 번 찍어 주세요'. 이태현 용인대 교수가 아끼는 제자들과 파이팅을 하고 있다.
씨름 '20-40클럽'의 전 천하장사 이태현이 안동체육관 앞에서 교수 및 감독으로 변신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씨름선수→이종격투기 선수→씨름선수→용인대 교수 및 감독'.

경북 김천 출신 전 천하장사 이태현의 변신은 완벽한 무죄다. 현역 씨름선수로서 뿐 아니라 이종격투기 선수로 깜짝 변신했다 다시 씨름판을 호령했다. 그러던 그가 올해부터는 용인대 교수 및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가끔 등장하는 TV출연은 덤이다. 쇼맨십이 있고, 이만기'강호동 못지않은 '센스'를 주변에서 인정받고 있기에 언제든 방송출연도 환영이다.

3년 전 대구 출신 전 천하장사 김정필과 함께 만난 적이 있는 터라 현역 은퇴 후 교수가 된 이태현을 보게 된 것은 재회 인터뷰의 성격까지 담게 됐다. 특히 지난달 고향 김천에서 눈물의 은퇴식을 가진 뒤라 그동안의 회한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달 5일 경북 안동체육관에서 열린 '2011 전국대학 안동장사씨름대회'에서 다시 이태현을 만나 2시간가량 그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전했다. 아직 피가 끓고 있는 교수이자 감독이었다. 감독인데도 선수들이 잘못하면 당장 씨름판에 올라가 한 번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역력했다.

열정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도 여전했다. 이날 모든 경기가 끝나자 용인대 선수들을 모아 두고, "씨름판은 전쟁터다. 전쟁터에서 지는 모습은 얼마나 비참한가? 패기와 열정을 모래판에서 불살라라. 그리고 무대에서 진정 즐기고 최후의 우승까지 맛봐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선수 시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20-40클럽' 주인공 이태현

야구도 아니고 무슨 '20-40클럽'인가? 이태현이 쌓은 금자탑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프로 1세대 씨름판의 황제 이만기의 기록을 뛰어넘는 전대미문의 기록이다. 야구로 비유하면 양준혁 선수가 가장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견줄 수 있겠다. 만 36세로 은퇴하기까지 백두장사 20회를 비롯해 천하장사 등 각종 장사 타이틀을 40회나 기록할 정도였으니 역대 씨름선수로는 최고의 자리에 가장 많이 오른 사나이가 됐다.

아직도 체구는 장대하다. '196㎝, 140㎏'. 옆에 서면 거인이라는 느낌이 확 든다. 게다가 눈도 부리부리하고, 가끔은 장난끼 섞인 말과 행동을 해 이중적인 매력을 선사하는 인기 스포츠스타다. 인터뷰 중에도 아줌마 부대가 두 번이나 달려들어 사진촬영을 부탁하는 바람에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댓바람으로 "은퇴 전 이슬기 선수에게 결승에서 졌는데 이만기 선수가 강호동 선수에게 밀리면서 은퇴를 했듯 '이제 다 됐다'고 스스로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슬기 선수에게 처음으로 진 경기가 그 경기였는데, 사실 나이가 있으니 다소 힘에 부치기도 했죠. 하지만 딱 한 번 지고 다소의 아쉬움이 있을 때 잘 은퇴했죠. 마침 용인대에서 교수직 제의도 있었어요. 잘 은퇴한거죠. 맞죠?"라고 반문했다. "맞죠". 그의 답변에 그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모래판의 황태자'로 김천에서 눈물의 은퇴식을 할 때 심경에 대해서는 "전 그저 씨름꾼으로 후회 없이 살았고, 이종격투기 외도(?)도 제게는 삶의 큰 자양분이 됐습니다. 은퇴식 날에는 절 찾아와준 많은 분들께 감사인사도 못해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가족과 감독, 선후배, 팬들이 눈물나도록 고맙습니다. 영원한 씨름꾼으로 남겠습니다."

이태현은 구미초등학교 때 씨름을 시작했고 의성고와 청구씨름단 등에서 활약했다. 2006년 여름 이종격투기로 진출해 화제를 낳기도 했지만 2009년 다시 씨름판으로 복귀했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자신을 담금질해 준 이종격투기

"이종격투기 외도를 빨리 접게 해 준 오브레임 선수가 고맙죠. 한 방에 실신해 일어나보니 선수 락커룸이었고, 한동안 창피해서 집 밖을 나설 수도 없었을 정도였어요. 더 늦기 전에 하루빨리 씨름판에 돌아오는 계기를 만들어줬죠. 만약 이겼다면 지금도 이종격투기 판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수도 있겠죠."

이태현은 2006년 이종격투기로 전향한 뒤, 러시아에서 체계적인 격투기 훈련을 받았다. 일본에서 1승을 거두며 나름 성공하는듯 했으나 세 번째 대전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톱 선수급인 알리스타 오브레임 선수에게 단 한 방의 펀치에 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씨름팬들과 네티즌의 엄청난 악플에 시달려 3개월 동안 집 밖을 나서지도 못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것 같아 지인들의 경조사에도 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결국은 오브레임의 펀치 한 방이 그를 다시 씨름판으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이태현의 이종격투기 외도를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야구에 도전했다 망신을 당하고 돌아온 것에 비유될까? 하여튼 다른 종목에의 도전정신만은 높게 평가해도 좋을듯 하다.

그렇게 씨름에 복귀한 뒤, 3년간 다시 천하장사로 호령하다 은퇴한 이태현은 놀랍게도 학구적인 기질도 있었다. 또 씨름선수 이후 꿈이 교수였다고도 밝혔다. 이태현은 이미 용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사논문도 스포츠 학계에서 주목받을 만한 논문이었다. 논문은 백두'한라'금강 등 씨름 체급별 선수들의 근육 및 유연성 등을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최근에도 씨름 활성화에 관한 연구과제를 생활체육협회에 제출했다. 여기서는 대구 출신 김정필 천하장사의 씨름교실 등으로 대구의 씨름이 활성화된 사례를 비중있게 다뒀다.

'가르치는 것과 직접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힘든가'라는 질문에는 "가르치는 것이 훨씬 힘듭니다. 한 번씩 제가 모래판에 뛰어들고 싶은 욕구가 아직도 솟구칩니다. 하지만 이제 한 발 물러서고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자극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교수도 씨름처럼 잘할 수 있습니다."

이태현은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으로 파이팅을 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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