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곱창으로 전골 만드는 데는 우리 골목밖에 없죠."
저녁시간 중리동 곱창골목에 들어서면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골목에 가득하다. 40여 개의 곱창전문 식당에서 테이블마다 곱창전골이 끓고 있고 주방에서는 곱창볶음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골목은 대구에서는 흔치 않게 소곱창을 쓰고, 간이나 천엽 등 다양한 소 부속물들도 맛볼 수 있다.
◆도축장과 함께 생긴 곱창골목
중리동 곱창골목이 형성된 데는 재미난 역사가 있다. 이곳이 원래는 도축장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골목과 마주 보고 있는 아울렛쇼핑몰 퀸스로드 자리에 30년 전 '도축장'이 있었다. 1981년 원래 성당못 자리에 있던 도축장이 지금의 퀸스로드 자리로 옮겨온 것.
도축장과 함께 옮겨온 것이 식육점, 식육식당 등 정육 관련 업체들이었다. 도축장에서 그날 잡은 싱싱한 고기를 취급하는 식육점만 60여 개가 있었고, 식육점과 함께 고기를 판매하는 포장마차도 줄지어 들어섰다. 당시에는 근처에 중리못이 있었는데 이 못둑을 따라 포장마차가 자리 잡았다. 한 상인은 "퀸스로드 자리가 도축장이었고 지금 곱창골목 자리가 포장마차촌이 있던 자리"라고 말했다.
당시 포장마차 인기메뉴는 천엽, 간 등 부산물과 곱창볶음이었다. 도축장이 중리동으로 온 지 2, 3년쯤 뒤엔 포장마차 자리에 단지형 상가건물이 들어섰고 포장마차를 하던 상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지금의 곱창골목이 형성됐다.
상인들의 대부분은 30년 전 지은 상가단지 위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골목에서 생활하다 보니 여기서 겪은 재미난 일도 추억도 많다. 한 상인은 "도축장이 있었을 때 새벽에 방에 누워 있으면 소울음소리가 들려온다"며 "그냥 우는 게 아니고 처량하고 불쌍하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었다"고 예전을 떠올렸다.
2001년 도축장이 검단동으로 옮겨가면서 60여 개의 식육점 중 상당수는 옮겨갔지만 곱창골목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어 대부분의 가게는 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식육점도 일부는 남아 골목에 곱창과 부속물을 공급해주고 있다.
◆최고 인기메뉴는 소곱창전골
대구에서 곱창으로 유명한 골목은 중리동 외에도 '안지랑 곱창골목'이 있다. 두 골목이 다른 점은 안지랑은 돼지곱창을 쓰지만 중리동은 소곱창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 안지랑이 양념을 한 돼지곱창을 구이로 먹는 것이 주 메뉴라면, 중리동은 소곱창전골이 가장 인기가 많다. 소의 큰 창자인 대창구이도 인기메뉴다.
골목을 자주 찾는다는 조영기(53) 씨는 "중리동 곱창전골은 소곱창을 쓰니깐 더 구수한 맛이 난다"며 "전골 국물이 얼큰하고 이곳 전골만의 특유의 맛이 있어 날씨가 우중충한 날이면 어김없이 골목에 들른다"고 말했다.
골목의 또 다른 인기메뉴는 생간, 천엽, 지레 등 소의 부속물. 도축장이 있던 시절부터 시내의 다른 육류를 취급하는 가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부속물들을 판매해 지금도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다. 최근에는 소 부속물도 수입산이 많지만 골목에는 도축장에서 가져오는 싱싱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두 국내산이다. 한 상인은 "곱창의 경우 한우와 육우의 구분은 어렵지만 여기서 취급하는 재료들은 고령 도축장과 검단동 도축장에서 가져오는 국내산"이라고 말했다.
◆소문난 맛에 멀리서도 찾아오는 손님들
골목 근처에는 인가가 드물다. 골목을 둘러싸고 서대구산업단지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산업단지 덕분에 골목 가게들도 웃을 일이 많았다. 수많은 공장에서 점심이나 저녁식사, 회식 때는 반드시 골목 가게를 찾았기 때문이다.
한창 산업단지 사람들이 많았을 때는 회식을 한 번 하면 큰 목욕 대야에 대창 30~40인분을 가게 가운데 놓고 테이블마다 가져다 구워먹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섬유공장이 많았던 서대구산업단지에서는 외국에서 찾아온 바이어들을 대접할 때도 곱창을 대접했고 일본이나 호주에서 온 외국인들은 신기해하며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상인들은 "공장들이 잘 돌아갈 때는 한 달에 3번은 꼭 회식을 했다"며 "앉을 자리가 없어서 손님이 기다리다 갈 정도였으니 엄청 잘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섬유업체들이 무너지면서 골목에도 손님들이 줄기 시작했다. 구제역 바람이 불었을 때는 타격이 더 심했다.
지금도 손님의 상당수는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지만 예전만은 못하다. 주변에 인가가 드물어 찾아오는 손님들은 골목의 맛을 알고 오는 단골손님들이나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다. 한 상인은 "서울에서도 소문 듣고 왔다며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며 "맛있다면서 서울서 장사하면 대박 날 거라고 서울 오라고 하는 손님도 있었으니 맛 하나는 인정받은 것 아니냐"고 웃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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