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제2, 제3의 안철수 바람도 환영이다

입력 2011-11-30 10:59:27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몰고 온 '바람'이 석 달이나 지나도록 거침이 없다. 정치권도, 언론도, 일반 국민들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이제 바람이 아니다. 태풍이고, '현상'이다.

그러나 정작 안 교수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정치나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이나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멘토나 측근이라는 주변 사람들만 이렇다저렇다 입방아들이지만 정작 본인은 조용하다. 한나라당이 "유령하고 싸우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권에서는 안 교수가 지원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우리 편'이니까 안 교수도 잠재적인 한편이라고 내심 위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 바람'에 대한 긴장도는 한나라당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그래서 민주당은 여기서는 논외다.

안철수 바람이 불어 더 답답한 한나라당에 초점을 맞춘다. 친박파 등 한나라당 사람들은 3년 반이나 지속시켜 온 대세론이 위협받고 있다며 큰 걱정들이다. 폭격을 맞은 것 같다는 게 적절한 표현이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 거의 석 달째인 29일 소속 국회의원'당협위원장이 참석한 끝장 토론이 열렸다. 선장과 간판을 바꾸자부터 리모델링에서 더해 재건축 정도는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안풍(安風)이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다급해진 때문이다.

그동안 '웰빙당' '공룡당' '당나라당'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려 온 한나라당이다. 2040세대 다수는 실제로 그런 이미지로 한나라당을 생각하고, 공격하고 있다. 이들이 안철수 바람의 진원지이고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의 주역들이라는 데 한나라당의 고민이 있다.

한참 늦었지만 2040세대의 외면과 질시를 애써 무시하는 듯하던 한나라당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부자 증세도 하고, 복지 확충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안철수 바람이 불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렵던 장면들이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표는 10'26 패배에 대해 "그동안 부족한 게 많았기 때문에 벌 받은 것"이라고 했다. 뼈아픈 반성으로 들린다. 다 '바람' 탓이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바람 이전과 이후의 모드가 바뀌었다.

시선을 나라 밖으로 돌려보자. 기존 질서 밖에서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가 보다. 최근 일본에서도 안철수 바람 같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며칠 전 끝난 일본 오사카(大阪)부 지사와 오사카 시장 선거 결과다. 지사와 시장에 모두 제3세력이라는 '오사카 유신(維新)의 모임' 출신이 당선됐다. 20, 30대 젊은 유권자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했다는 것도 닮았다.

일본의 정치권은 충격에 휩싸였다. 장기불황에 고통받는 일본인들로부터 퇴출 명령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설도 뒤를 따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권은 다행(?)스럽게도 일본처럼 레드카드가 아닌 옐로카드를 받은 상태다. 기사회생의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4월 총선을 거치고 대통령 선거에까지 이르면서 환골탈태에 성공할 경우 지금은 힘들어 보이는 정권 재창출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결국 '안철수 바람'이 없었다면 정치권에서 요즘처럼 깊이 있는 반성 모드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특히 덩치만 컸지 내성은 낙제에 가깝던 한나라당의 맷집을 기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곧, 안철수 바람의 긍정적 효과다.

'안풍'이 기성 정당들의 혁신에 촉매제로 작용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안풍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변하지 못하면 일찍 도태시키는 것도 시간벌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제2, 제3의 안철수 바람도 대(大)환영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안철수 바람'과 비슷한 일본의 '하시모토' 바람이 수도인 도쿄가 아닌 지방도시 오사카에서 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구경북에서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대구경북판 안철수 바람'도 기다려 볼 일이다.

이동관/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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