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을 친구로 두어 행복합니다
'샘, 기억나요? 우리는 거의 첫눈에 알아보았지요. 그때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사람이 연암 박지원이었습니다. 연암을 좋아한다는 그 말 하나로 우리는 그냥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논술 학교를 열고, 논술 연수를 준비하고 논술 관련 책을 만들면서 참 많은 시간을 함께하였지요. 샘이 하나의 제안을 하면 그것은 마치 내 맘 저 깊은 곳에 있던 것이 튀어 오르는 것만 같았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지만 그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이었지요. 함께한 우리 팀 사람들이 주변에서 놀랄 만큼 열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샘의 열정과 추진력과 상상력과 배려 때문이었지요. 샘은 우리 팀을 무척 사랑했지만 샘의 가장 큰 사랑은 학생들이었지요. 그 사랑을 우리는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끝없이 새로운 것에 접속하면서도 따뜻하고 쾌활하신 샘. 샘을 친구로 두어 참 다행입니다.'
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이란 이름으로 7년이나 선생님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은 분명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위의 글은 내가 힘들어할 때 지원단의 L선생님이 보내준 것이다.
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의지를 가지고 접근하지만 외로운 싸움 속에서 대체로 지친다. 도와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품은 많이 들지만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지칠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함께 걸어온 선생님들 덕분이다. 지금도 힘들게 학교 논술교육을 위해 자리를 지키는 선생님들이 고맙다. 만약 논술교육이 아주 유효한 교육방식이라면 그 중심에 여전히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최근 지원단이 관심을 가지고 일하는 영역은 디베이트이다. 논술하는 사람들이 왜 디베이트냐고 말하면 모임의 본질을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지원단은 논술이라는 수단을 활용해서 학교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보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반복되는 주입식 수업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구술면접 자료를 만들고 실천했으며 책쓰기 교육을 이끌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달 29, 30일. 낙동강을 앞에 두고 산등성이에 구름이 감겼다. 강에는 옅은 안개가 가득했다. 곳곳에 가을 단풍도 깊었다. 가을 풍경보다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 이틀 동안 그려졌다. 토요디베이트학교 학생들의 디베이트캠프는 토론 열기로 오후 10시를 훌쩍 넘겼다. 토론이 끝났음에도 몇몇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있었다. 60명이 넘는 아이들은 아무도 졸거나 지겨워하지 않았다. 장장 16시간의 장거리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왜 그들은 불평하지 않을까? 이유는 단 하나! 스스로 선택한 학습을 하고 그 시간 동안에는 자신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풍경이다.
수많은 하루들이 흘러간다. 변화를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데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말 두꺼운 것이 세상이고 무거운 것이 사회이다. 시간은 변화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과 함께 달려가지 않으면 이미 과거이다. 두려운 건 변화를 바라는 미래의 시간이 시간과 더불어 상투화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정말 계속 믿고 살아가고 싶은 진실, 그건 내가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믿음이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들을 믿으니까.
(한준희 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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