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공경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다.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사랑에 비하면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희생하는 경우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한 만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다.
필자가 알고 있는 지인 중 '효부상'을 받은 분이 있다. 그분은 17세에 꽃가마를 타고 결혼을 했다. 지금 그 연세가 70이 훨씬 넘었으니 아마도 그 시대 시골에서의 결혼식 풍경은 그러했을 법하다. 그분은 타고난 고운 품성을 가지고 계셨다. 하인을 거닐 만큼 부잣집의 장녀로 자란 그분은 결혼 후 시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남편을 자신보다 더 섬기며 여자로서의 인생을 걸어왔다.
마을의 대소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놀기도 잘 놀았다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 한곳이 짠했다. 그분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게 아마도 '樂'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그분에게서 풍류(樂)는 자신을 희생하고 시부모와 남편과 자식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원천이었을 것이다.
어쩜 그 시대의 모든 여자들이 그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이 '효부상'을 받은 것은 그 시대의 여자들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남편을 위해 내조를 하며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분은 시부모가 아파 누워계실 때 욕창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방바닥을 파가며 간병했다.
젊어 자신보다 시부모, 남편, 자식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 허리는 일찍 꼬부랑 할머니의 허리가 되었으며,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요양원에서 연명하고 있다. 자신의 몸보다 아끼며 키워 온 자식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그분이 시부모를 모실 때처럼 극진히 모시지 않는다. 누구나 다 하는 기본적인 간호는 하지만 다들 바쁘다는 이유로 요양원을 찾는 자식이 없다고 한다. 간병인에 의지하며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 가고 있는 그분이 젊어 시부모를 모실 때 훗날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되리라 생각했을까. 그분 남편의 극진한 간호가 아마도 그분의 처지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효부상'은 자랑스러운 상이다. 아무에게나 주는 상도 아무나 받는 상도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효부상'이라는 상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효부상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것만 같아 온종일 마음이 씁쓸하다.
이 정 희 예전아트센터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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