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울릉도'하면 생각나는 것

입력 2011-11-24 14:11:49

독도의 파도 철석대는 바닷가에 달과 마주 앉아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이 소

그동안 울릉도엘 10번쯤 다녀왔다. 대학의 산악부에 들어가 성인봉을 오른다며 화물선을 타거나 운 좋게 해군 함정을 얻어 타고 그 섬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 후로는 동해호'청룡호'한일호'썬플라워호 등 새로 나온 신식 여객선을 타고 들락거렸다. 그때는 8시간 내지 10시간씩 걸렸지만 요즘은 3시간 미만으로 앞당겨졌다.

독도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독도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독도를 목표로 계획을 세웠어도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는가 하면 때론 풍랑이 심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은 도동항에 내려 승선권만 구하면 당일 독도 왕복이 가능해졌다. 여태까지 딱 한 번 독도에 갔다가 30분 머물고 돌아선 경험밖에 없다. 파도가 철석대는 바닷가에 앉아 돋아오르는 달과 마주 앉아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이 소원이지만 아직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30년 전쯤이다. 독도 상공에 일본 요미우리 방송국의 비행기가 날아오고 일본 배들이 인근 해역에서 순시를 하는 등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의 아마추어 햄(HAM)들이 독도에 들어가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입니다'란 무전을 세계 각국에 날리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신문사에서도 독도에 취재기자를 보내기로 했다. 겁 없이 산과 들로 잘 뛰어다닌다고 그랬는지 몰라도 '독도에 다녀오라'는 명이 떨어졌다.

때는 동해에 풍랑이 가장 센 한겨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출항하는 날이 태풍 경보가 발령되기 바로 전날이었다. 청룡호를 타고 10시간 동안 롤링과 피칭에 시달렸다. 출발 직전 포항 선창가에서 먹은 시래기 해장국을 몽땅 토해 내고 말았다. 도동항에 내렸어도 땅은 여전히 울렁거렸고 다리가 후들거려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도동항에서 가까운 여관을 숙소로 잡았다. 독도에 들어갈 수 있는 배편을 수소문해 봤으나 모든 배들은 내항 깊숙한 곳에 목줄을 매고 태풍이 멎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도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비슷하게라도 해내야 하는 것이 기자의 생리다. 눈이 와 있는 겨울 독도 사진만 구하면 '독도에 다녀왔다'해도 누가 알 것인가. 눈 사진 한장 구하기 위해 도동의 사진관을 모조리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허사였다. 다음날 울릉군에서 '전경들이 칼빈 소총을 겨누고 있는, 눈이 하얗게 내린 독도' 사진 3장을 어렵게 구해 주었다.

사진을 구한 다음 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옛날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과 함께 독도를 사수했던 대원 한 사람을 만나 당시의 상황을 소상하게 전해 들었다. 그런 다음 군 공보실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통해 독도의 사계절과 동식물 분포 상황 등을 종합하여 박스 기사 3회분을 써놓고 보니 할 일이 없어졌다. 태풍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흘째부터 폭설이 퍼붓기 시작했다. 울릉도의 눈은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엄청난 것이었다.

울릉도 사람들은 1m 이상 눈이 쌓이자 눈 치우는 일을 포기하고 눈을 다져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눈 위에 연탄재를 뿌려 미끄럼을 방지했고 길 아래 집들은 눈으로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렸다. 눈 속에 뚫려 있는 구멍들은 굴뚝이었고 그 구멍 사이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이 그친 나흘째 되는 날 저동에 살고 있는 산 친구를 찾아 나섰다. 아이젠도 없이 도동에서 저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넘자니 그게 바로 눈길 산행이었다. 문어 '반피대기' 조림을 안주로 오후 내내 막걸리를 마셨다. 친구는 "눈길이 위태로우니 자고 가라"며 말렸으나 언덕바지에 있는 화장장을 돌아 도동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눈빛은 어둠을 밝히는 강렬한 빛이었다. 달도 뜨지 않은 밤길이었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울릉도에 들어간 지 11일 만에 청룡호 편으로 육지로 돌아오니 세상이 온통 낯설어 보였다. 마른 오징어와 돌김 한 축을 기념으로 샀다. 그 돌김은 여태까지 먹어 본 김 중에서 단연 최고여서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신문사로 돌아오니 아무도 "독도에 가 봤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기자는 기사(記事)로 말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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