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지방悲歌'…수도권에 치여 '백수' 신세

입력 2011-11-18 10:20:51

내년 1기 졸업생 2천여명…발등의 불 경북대, 영남대

법조인의 꿈을 안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문을 두드렸던 학생들의 시름이 깊다. 로스쿨은 내년에 첫 졸업생 2천여 명을 배출하지만 법조인 수요가 턱없이 모자라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도 힘겹다.

특히 경북대, 영남대 등 지역대 로스쿨 출신들은 지역의 법조인 수요가 원천적으로 모자라는데다 가장 채용 규모가 큰 서울의 대형 로펌들은 수도권 로스쿨 졸업생을 선호해 당초 꿈꿨던 장밋빛 인생을 설계하는데 차질을 빚고 있다.

◆지역 로스쿨생, 시름 두 배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안수지(25'여) 씨는 수도권 로스쿨을 마다하고 고향에 있는 경북대 로스쿨을 택했다. 하지만 로스쿨 간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작용하는 현실에 착잡하기만 하다. 몇몇 대형 로펌들은 수도권 로스쿨에만 변호사 채용 공문을 보내 지역 로스쿨을 은근히 차별하고 있기 때문. 정책연구원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진학한 안 씨는 "지역 로스쿨 출신이라고 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정보 접근 기회마저 공평하게 주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전국 25개 로스쿨이 연합해 채용이나 인턴 공고를 공유하는 공식 '채용 풀'을 만들면 좋겠지만 수도권 로스쿨이 소극적이어서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내년 우리나라 법률시장에 예비 변호사들이 대거 쏟아진다. 전국 25개 로스쿨 총정원은 2천 명으로, 이중 75%인 1천500명가량이 변호사로 출발할 전망이다. 지역의 경북대와 영남대 로스쿨에서도 각각 103명과 62명이 졸업한다. 여기에 사법연수원 수료생 1천 명을 더하면 총 2천500여 명이 법조시장에 나오게 된다. 사법연수원생들의 미취업률도 심각하다. 사법연수원에 따르면 2008년 사법연수원생 미취업률이 35.9%에서 2009년 44.1%, 2010년 44.4%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실정.

대법원의 재판실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원 '로클럭'(law clerk) 채용안도 지방 로스쿨생들에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대법원은 이달 초 로스쿨 1기 졸업생 중 100명을 로클럭으로 임명해 전국 5개 고등법원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지역 할당제'가 되지 않아 서울과 수도권 로스쿨 졸업생들이 독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경북대 로스쿨 한 졸업생은 "대법원은 지역 로스쿨 활성화 차원에서 로클럭 임용 방안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무엇이 우리에게 도움되는지 모르겠다"며 "전국 5개 고법에서 해당 지역 출신 로스쿨 졸업생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등의 구체적인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늘구멍 취업문 스스로 뚫는다

경북대 로스쿨은 지난달 대구 유명 로펌과 재학생이 만나는 '취업박람회'를 열었고 졸업예정자 중 몇 명은 채용 확답을 받았다. 또 로펌과 민간기업 등 채용 공고를 모은 사이트를 개설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영남대 로스쿨도 내년쯤 현재 1, 2학년인 2, 3기생을 대상으로 로펌과 기업 관계자들을 초청해 취업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영남대 로스쿨 박기준 학생회장은 "로스쿨 도입 취지가 다양한 분야에 법률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는 변호사를 배출하기 위한 것 아니냐"며 "변호사시험 모의고사에서 우리 학교 학생이 1등을 할 정도로 지역에 우수 인재가 많다"고 했다.

로스쿨 재학생들은 취업 걱정 때문에 졸업 전부터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기도 한다. 영남대 로스쿨 2학년 김모(32) 씨는 공인회계사(CPA) 자격증 소지자다. 공대를 졸업한 뒤 회계법인에서 2년간 근무했던 그는 앞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세법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김 씨는 "국세청이나 기획재정부 등 정부나 민간기업에서 세법 전문가로 활동하고 싶다"며 "정부나 관공서의 변호사 인력 수요에 의존하기보다 원래 변호사가 활동하지 않았던 직역까지 로스쿨 출신이 진출한다면 취업 문이 좁은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로스쿨 도입 취지를 살려 변호사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대구대 법학과 나태영 교수는 "정부가 법률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를 많이 배출하기로 해놓고 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법률 서비스는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등에서 법률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채용해 법조 인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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