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정치공학을 이기려면…

입력 2011-11-15 07:37:31

이번에는 용케 맞혔다. 로또번호 이야기가 아니라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 말이다. 정치부 기자에게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질책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이제야 민심의 바닥에 흐르는 '시대정신'을 같이 호흡하게 됐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자 또래인 '40대의 반란'도 예상대로였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번번이 오판을 했다. 올봄 4'27 재보선, 지난해 6'2 지방선거, 2009년 4'29 재보선 등등에서 예측은 빗나가기만 했다. 때로는 순진했고, 때로는 어리석었다. 물론 돌아보면 민심과 동떨어진 소통 부족 때문이다. 하기야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선거 당일 오전에도 "결과가 몹시 궁금하다"며 돌아선 천심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예상이 잘 맞아들어가는 것은 또 있다. 인기 가수들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순위다. 청중 평가단의 호응도를 읽어내고, 비슷한 감정을 갖는다는 게 좋아서 이 프로그램을 본다는 이들도 주변에 적지않다. 필자 또한 같이 TV를 보는 아내에게 여봐란 듯 팔불출처럼 뻐기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등수 맞히기 놀이가 시들해졌다. 대충 게임의 룰이 알 만해진 까닭이다. 고정 이미지를 깨는 파격과 흥겨운 무대 연출이 상위권 진입에 절대적인 조건이 되면서 너나없이 '쇼'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관객과의 소통이라 주장할 수도 있지만 "왜 노래 실력으로 평가하지 않고 볼거리에만 매달리느냐'는 아내의 볼멘소리에 수긍이 더 간다.

가끔 정치와 공개 서바이벌 오디션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살아남는다는 데 일치한다. 진심은 몰라줘도 상관없다. 비난을 받을지언정 '꼼수'를 쓰면 생존 고지를 점령하는 데 일단 유리하다.

서울시장 보선 며칠 전에 만난 한 친박계 인사는 '박근혜 위기론'을 꺼냈다. 한나라당 소속 나경원 후보가 선전하고 있지만 투표일 직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원에 나서면 박 전 대표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었다. 그는 이 같은 우려를 박 전 대표에게 실제로 전했다고도 강조했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 박 전 대표의 '대세론'에도 금이 갔다. 그러나 필자는 그가 전한 박 전 대표의 대답에 더 주목하고 싶다. "제가 언제 정치공학을 따져 움직이는 걸 보셨어요?"

최근 만난 또 다른 친박계 인사는 박 전 대표의 내년 대선 승리 가능성에 대해 "무조건 이긴다"고 장담했다. 정치 판세 분석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 그는 "박 전 대표가 안철수 원장과 맞대결해도 우세승"이라고도 했다. 다만 "안 원장이 계속 재야에 머물면서 범야권을 지지하는 형국이 가장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 또한 박 전 대표의 '원칙'에는 다소 어긋나는 정치공학이다.

예전에 없던 예지력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지만 내친김에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 결과도 맞힐 수 있을 듯하다.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스토리도 감동도 없는 '쇄신 메아리'에만 매달린다면 소수 야당으로 몰락은 불가피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젊은층이 적극 참여하는 소셜네트워크(SNS)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애쓸 게 아니라 젊은층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유권자들의 스윙 보트(Swing vote)만 탓할 게 아니다.

이상헌/서울정경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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