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소리 머금은 갈대 사이로 호수처럼 잔잔한 강이 흐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강변 갈대밭에서 비파(琴)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소리가 나고 호수(湖)처럼 물이 맑고 잔잔하다.' 금호강은 이름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갈대의 강이다. 사람의 발길이 덜 닿은 상류 자호천에는 온통 갈대꽃 물결이 연보라색으로 가을을 물들인다. 개발에 밀려난 갈대가 금호강 발원지 근처까지 올라와 지천으로 피었다. 갈대꽃이 핀 강가 과수원에는 금호강의 상징이었던 사과도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온난화에 밀려난 사과가 서늘한 금호강 상류의 샛강을 따라 올라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군데군데 자리한 녹색 습지들이 영천'경산'대구시민의 젖줄을 정화하고 있다.
금호강 발원지 포항 죽장 '독지골'
금호강은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가사리 가사령에서 발원해 가사천을 따라 흐르다 죽장면소재지에서 자호천으로 유입된다. 영천시 자양면에서 영천댐에 모여 댐 하류로 흘러 임고천, 고촌천과 합류한 뒤 영천시내를 통과해 신녕천과 북안천을 만나 큰 강을 이룬다.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금호강은 대창천, 청통천, 경산의 오목천, 남천을 만난 뒤 다시 대구의 율하천, 불로천, 동화천, 신천, 팔거천, 달서천, 이언천 등 샛강을 차례로 합류하며 서류하다 달성군 다사면 죽곡리 지점에서 낙동강에 유입된다. 길이 116㎞에 유역면적은 2천53㎢이다.
최근 금호강 발원지를 찾아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표지석이나 안내판이 없어 가사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참고로 직접 찾아봤다.
포항시 죽장면 가사리에서 상옥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가사4교로부터 왼쪽 골짜기로 들어가면 물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가사리 주민들은 왼쪽 골짜기를 '독지골', 오른쪽을 '점밭골'이라 부른다. 골짝이 더 깊다는 '독지골'을 따라 1㎞ 정도 들어가면 7부 능선의 작은 계곡에서 물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는 지점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을 금호강 발원지로 보면 될 것 같다.
현재 '독지골'과 '점밭골' 합류지점에 경북산림환경연수원에서 발주한 대규모 사방댐 공사를 하고 있어 금호강 발원지 생태환경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독지골에는 1급수에만 사는 가재나 깊은 산골짜기의 야생과일 다래를 볼 수 있지만, 독사도 자주 나타나 등산화를 신고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지골 골짜기에는 군데군데 계단식 경작지와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최상대(86'포항시 죽장면 가사리) 씨는 "이전에 이 길을 따라 청송으로 넘어가거나 콩과 팥을 지고 청하장을 보고 돌아왔다"며 "신작로가 건설되기 전에는 옛길이 대로였다"고 말했다.
금호강에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있다?
가사천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시냇가 논밭에서 콩, 고추, 수수 등을 수확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정겹다. 전망이 좋은 곳이나 골짜기 곳곳에 민박집이나 펜션이 들어서 관광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나들이객들이 가족과 함께 찾아 고향에 온 듯 푸근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농촌 들녘을 지나면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우뚝 솟은 바위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입암(立巖)이다. 이 선바위로 인해 이곳의 이름도 입암리이다.
영남의 유학자 여헌(旅軒) 장현광 선생이 1600년경에 이곳에 들어와 학문에 정진하며 입암을 비롯한 바위, 산봉우리, 시냇물, 숲 등 입암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 28곳에 이름을 붙인 뒤 기문 '입암기'(立巖記) 및 '입암십삼영'(立巖十三詠)을 포함한 다수의 한시를 남겼다. 장현광 선생은 절경 28경을 28수(宿) 성좌에 비유하고 입암을 북극성으로 여겼다. 입암 옆의 일곱 개 돌을 상두석(象斗石)이라 이름 붙여 북두칠성에 견주었다. 잎이 떨어진 가을에 입암의 뒤편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7개의 돌을 확인할 수 있다.
김동욱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는 "고대 28수 성좌는 하늘에 움직이지 않는 북극성을 상정하고 그 주변의 별들을 28개 구역으로 구분한 개념이다"며 "장현광 선생이 입암을 북극성에 비유함으로써 모든 별자리의 우두머리이자 불변하는 북극성처럼 자신의 은거지를 변하지 않는 우주의 중심으로 여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蘆溪) 박인로 선생은 당시 영천 북쪽에 은거한 장현광 선생을 자주 찾아 입암과 주변의 아름다운 산수를 읊은 시조 29수와 가사 '입암별곡'(立巖別曲)을 남겼다.
비파소리 들리는 갈대천지 '자호천'
금호강 상류 자호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잎 소리가 비파소리처럼 들리는 갈대천지를 이루고 있다. 특히 영천시 임고면 자호천교∼양수교∼양항교 및 대환교∼선원교∼평천교 구간은 가을에 활짝 핀 연보라색 갈대꽃으로 장관을 연출한다. 약 4㎞에 이르는 이 구간의 강 전체가 갈대꽃으로 뒤덮여 대평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갈대의 강인 금호강 본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자호천교 아래 보는 물이 모여 거대한 습지를 이루고 있다. 백로들이 한가롭게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강 가장자리로 흐르는 시냇가에는 흰나비와 고추잠자리들이 여뀌꽃 주위를 맴돌고 있다. 바람이 불 때 강변에서 귀를 기울이면 비파소리처럼 아름다운 갈대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호천교에서 왼쪽 강변길을 따라 양수교 쪽으로 올라가면 강변에 사과밭과 복숭아밭을 함께 볼 수 있다. 기후 온난화에 따라 사과에서 복숭아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이다.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입구 대환교∼선원교 구간은 한적하게 갈대꽃을 구경하며 걷기에 제격이다. 오른쪽 둑길을 따라 선원교 쪽으로 걷다 보면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벌개미취꽃이 반긴다. 벌개미취꽃 옆에는 인근 농부들이 꿀벌을 치는 벌통도 놓여 있다. 둑길 중간쯤부터 선원교까지는 포장되지 않은 잔디길이라 푸근하게 걸으며 왜가리도 볼 수 있다. 임고강변공원 위쪽에서도 그림 같은 갈대꽃을 구경할 수 있다.
금호강 샛강 상류로 밀려난 대구사과
금호강의 상징이었던 대구사과가 도시화와 지구온난화에 밀려 상류의 샛강으로 밀려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구사과는 1905년 칠성동에서 330그루로 상업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으며 1917년에는 평광동, 칠성동, 동촌, 반아월 지역에 5, 6개의 과수원이 있었다. 1960년대에는 재배면적 9천129㏊에 9만315t을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87%를 차지했으나, 1980년대 도시 팽창으로 급격히 쇠락했다. 현재 대구사과는 동구 평광동'내동, 수성구 등 153㏊에서 재배되고 있다.
금호강 샛강인 불로천 상류 대구 평광동에는 140농가에서 120㏊를 재배하고 있다. 평광동에는 수령 30, 40년의 부사 사과나무들이 골짜기마다 빽빽하다. 우채정(85'대구 평광동) 씨의 집 뜰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81년의 사과나무에 홍옥이 주렁주렁 달려 탐스럽게 익었다.
주민 우희윤(57) 씨는 "대구시내보다 기온이 5℃ 정도 낮은 평광동은 밤낮의 일교차가 큰 청정지역으로 사과 재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경산에서는 예전에 하양, 압량, 자인 등에서 사과농사를 많이 지었으나 현재 재배면적은 18㏊에 그친다. 와촌에서 30여 농가가 7㏊를 재배하고 있다.
비가 적고 햇볕이 많은 영천이 옛 대구사과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1천560농가가 재배면적 812㏊에서 1만4천t의 사과를 생산해 금호강 유역 중 가장 많다. 영천시 화북면 보현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고현천 옆 과수원에는 부사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화남, 임고, 고경, 자양 등에서도 아직 사과가 재배되고 있다. 일조량이 많아 다른 지역보다 늦게 수확하는 영천사과는 높은 당도로 서울 도매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한다.
금호강 발원지인 포항 죽장에서도 가사천, 자호천을 따라 곳곳에 사과나무가 즐비하다. 죽장에는 376농가가 320㏊의 면적에서 주로 부사를 재배한다.
수달이 사는 생태계 보고
금호강은 수달의 강이다. 중'하류의 불로천, 동화천, 신천, 팔거천, 이언천을 비롯해 상류의 자호천, 임고천, 고촌천, 신녕천, 북안천, 대창천, 청통천, 오목천, 남천 등 거의 모든 샛강에 멸종위기종인 수달이 서식하고 있다. 수달이 금호강 수계 전역에 걸쳐 서식하며 샛강으로 이동해 먹이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호강의 발원지 가사천에도 수달이 살고 있다.
영남자연생태보존회에서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금호강 상류 17개 지점에서 어류 14과 30종이 확인됐다. 금호강 상류의 한국고유종 및 아종은 각시붕어, 칼납자루, 쉬리, 참몰개, 긴몰개, 돌마자, 참갈겨니, 수수미꾸리, 기름종개, 얼룩새코미꾸리, 꼬치동자개, 미유기, 꺽지, 동사리 등 14종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자호천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 어류 얼룩새코미꾸리, 꼬치동자개 및 멸종위기종 2급인 다묵장어, 잔가시고기 등이 채집돼 이 일대가 금호강의 생태계 보고로 확인됐다.
2005년 대구지방환경청의 금호강 샛강 조사에서 관찰된 조류는 백로과, 할미새과, 오리과, 도요과, 물떼새과, 뜸부기과, 논병아리과, 물총새과, 매과 등 9과 23종으로 나타났다. 희귀종으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흰목물떼새가 신천 수성교 부근에서 확인됐으며 천연기념물인 원앙이 신녕천에서 관찰됐고, 황조롱이는 자호천, 임고천, 청통천, 오목천 등에서 관찰됐다.
글'사진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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