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의 펀펀야구] 정인욱의 메카니즘

입력 2011-11-08 10:08:14

메커니즘은 기구나 기계장치란 뜻이지만 오늘날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특히 야구나 골프에서는 기본자세나 연결동작의 통칭과 함께 그러한 자세나 동작이 빚어내는 기교나 자질이란 뜻의 뉘앙스도 함께 담고 있다.

이 분야의 코치들이 흔히 하는 얘기로 "좋은 메커니즘을 가진 선수는 당장은 빛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언젠가 필요한 무엇과 결합이 되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안지만이 그랬다.

안지만은 프로 입단시기에 180㎝의 키에 불과 70㎏의 몸무게로 갈대 같은 체형이었지만 좋은 메커니즘에 볼 끝이 살아있어 오직 발전 가능성만 보고 스카우트한 선수였다.

대구상원고 시절 그는 언더스로 투수, 2루수를 전전하며 고3 때까지 헤매고 있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오버스로로 투구 폼을 바꾼 것이 주효하면서 숨어 있던 메커니즘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프로에 진출하면서 체중이 붇고 숱한 경험과 자신감을 키우면서 중심투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비슷한 투구 폼을 갖고 있는 정인욱 역시 좋은 메커니즘이 드러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인욱은 본리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지만 소질은 별로였다. 체격도 작고 왜소한데다 발까지 느려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다가 2루수로 정착했지만, 중학교 진학시기가 되어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배정되다시피 진학했지만 중학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인욱은 명랑한 편이었고, 결과에 개의치 않고 매사에 열심히 임했다.

외동아들이 의기소침할 것을 염려해 밝게 자라도록 부모가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했던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시기가 임박했지만 이번에도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당시 대구고의 박태호 감독(현 영남대 감독)이 예전 본리초등학교 코치 시절 지도한 인연으로 간신히 진학할 수 있었다.

고2가 되면서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키가 쑥 자라면서 체중도 불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던지는 쪽으로 진전이 있었다. 스피드는 크게 없었지만 제구가 송곳처럼 뛰어나 프리배팅 투수를 도맡았다.

어느 날 뜻밖에 인연이 찾아왔다. 롯데 선수 시절에 박태호 감독과 절친했던 동의대 조성옥 감독(작고)이 학교에 찾아와 프리배팅 볼을 던지던 정인욱을 보고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래저래 안 되니 투수로 만들어 자신에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진학이 어려울 것으로 여겼던 박 감독은 조 감독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을 했고, 그날부터 정인욱은 야구를 시작한 지 9년 만에 비로소 정식투수로 자리를 찾았다.

본격적인 투수를 시작하면서는 서서히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2루수를 맡으면서 자세히 보지 못했던 그의 투구 메커니즘이 권영진 투수코치(현 대구고 감독)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는 삼성의 1군 투수가 되어 있었다.

변신이 유일한 탈출구일 때 비로소 숨은 메커니즘도 껍질을 벗는 법이다.

최종문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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