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휘의 교열 斷想] 개갤 거야?

입력 2011-11-07 07:53:35

'말을 잘 하는 것과 잘 말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은 말솜씨가 좋은 것이고, 잘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말을 솔직하게 하려면 내가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야 합니다.'(정도언의 '프로이트의 의자' 중에서)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만 잘 하면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으로 자신의 인격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요즘 학생들의 대화 중에 욕설이 상당수 포함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가 됐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적이다. 학생들의 심한 욕설은 가정교육도 일부분을 차지한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어릴 때부터 단답식 어법만 가르쳐놓다 보니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말 잘 하는 사람이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화법에 따른 대화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글쓰기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0월 초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한 국회의원이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청와대 한 인사가 이 국회의원에게 보낸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발단이었다. 메시지를 보낸 인사가 앞부분에 들어갈 주어를 생략하다 보니 자신에 대한 회한인지, 상대방에 대한 섭섭함인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짤막한 글이든 길게 쓴 글이든 읽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게 글쓰기의 기본이다. 여기에는 올바른 단어 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정문에서 경비원에게 여러 번 굽신거려 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비빌 언덕이 따로 있지 능력도 없는 나에게 개길 거야?"

앞서의 예문에 나오는 '굽신거려' '개길'은 흔히 잘못 쓰이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굽실거리다'는 고개나 허리를 자꾸 가볍게 구부렸다 펴다,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자꾸 비굴하게 행동하다라는 뜻으로 "팔기는 토방 위에 서서 연방 허리를 굽실거려 보였다." "그는 고압적인 자세로 마구 삿대질을 하는 것이었으나 그러다가 단박에 풀이 꺾여 굽실거리며 아양을 떠는 적마저도 있었다."로 쓰이며 '굽신거리다'는 잘못된 표기이다. '개개다'는 자꾸 맞닿아 마찰이 일어나면서 표면이 닳거나 해어지거나 벗어지거나 하다,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다라는 뜻이다. 이를 '개기다'로 표기하면 잘못이며 "구두 뒤축에 개개어서 뒤꿈치의 살가죽이 벗겨졌다." "그 사람은 허구한 날 너한테 와서 개개니?"로 쓰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사와 동료들과의 인화(人和)와 함께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업무는 뒷전인 채 개개면서 오로지 출세만을 위해 지나치게 굽실거리는 직원들은 볼 때면 맥이 빠지게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 한 번쯤 되돌아보면 좋겠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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