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낯선 북한이탈주민] 부적응 실태

입력 2011-11-03 10:42:39

어딜가나 경계 눈초리 '주눅'

북한이탈주민들이 사회 적응과 정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2만여 명, 대구경북엔 1천40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이 있지만 앞으로 더 급증할 것으로 전망돼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체계적인 지원대책이 절실하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서 겪는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냉대와 무관심이 힘들어요

2007년 7월 탈북한 A(60) 씨는 20대인 딸, 아들과 함께 남한으로 왔다. A씨는 4년여 동안 7개의 직장을 전전했다. 자동차 부품회사, 막노동, 공공근로, 기계제조업체 등에서 온갖 일을 했지만 한 직장에서 두세 달을 버티지 못했다. A씨는 "직장 동료들이 탈북자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이상하게 쳐다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A씨의 딸과 아들도 남한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한 회사에서 경리일을 보던 딸은 5개월쯤 다니다 최근 그만뒀고, 대학에 다니는 아들은 휴학 중이다. 현재 한 탈북지원단체에서 기계부품 포장 일을 하는 A씨는 "오래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북한이탈주민인 B(54) 씨는 "겉으로는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하지만 깊은 정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서로 경계하고 조심스러워 한다"고 했다.

통일부는 고용'산재 보험에 가입된 직장에 3년을 꾸준히 다니면 1천800만원의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이 기간을 채우는 이탈주민은 많지 않다.

2008년 혼자 남한에 온 북한이탈주민 C(44'여) 씨는 정착 초기 한 달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정착금은 모두 영구임대 아파트를 구하는 데 쓰고 생활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 C씨는 한 달 동안 탈북지원단체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정부는 이탈주민에게 1인당 1천900만원을 지급하지만 이탈주민들은 대부분 한 푼의 현금도 손에 쥘 수 없다.

북한이탈주민들에 따르면 정부는 정착금 1천900만원 중 1천300만원은 아파트를 임대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반강제적이다. 300만원은 각종 생필품을 구입하도록 현금으로 지급한다. 나머지 300만원은 정착 석 달 이후부터 분기별로 100만원씩 세 차례로 나눠 지급한다.

하지만 정착 초기에 받는 현금 300만원은 이탈주민이 아닌 브로커 손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탈주민들은 중국을 통해 국내로 입국하는 동안 브로커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신 남한에서 받은 정착금 중 일부를 브로커들에게 건네준다. 이영석 북한이주민센터 팀장은 "브로커 비용은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한다. 예전에는 1천만원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브로커들은 워낙 점조직으로 연결돼 있어 정부에서도 실상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은 더 힘들어요"

2만여 명의 북한이탈주민 중 3분의 2가량이 여성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자녀 양육 때문에 고용 및 산재보험에 가입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탈북여성들이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을 할 수 없는 탈북여성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잦은 이직을 막기 위해 3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을 하면 1천800만원가량의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제도를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의 이탈여성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탈북단체 관계자는 "이탈주민들의 개인적인 사정에 맞는 다양한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이들의 남한 정착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이탈주민들과 탈북지원단체들은 입국 초기 생필품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허영철 북한이주민지원센터 소장은 "현금이 한 푼도 없는 탓에 남한 사회를 지켜보면서 여유를 가져야 할 시기에 무작정 돈벌이에 나서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현금과 생필품을 같이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탈북자들의 잦은 이직을 막기 위한'잡 코디네이터'제도도 절실하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직장에서 오해가 발생할 경우 잡 코디네이터들이 남한 동료들과 이탈주민 사이에 가교역할을 해주는 제도다. 잡 코디네이터가 직장 생활의 멘토로 역할을 해주는 것. 김창현 북한이주민지원센터 팀장은 "직장을 그만두려는 이탈주민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며 "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직장 관계자들에게 전해주면 오해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연희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북한과 남한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정착 초기 갖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을 이탈주민이나 남한 국민들이 모두 인식해야 한다"며 "정부의 포괄적인 지원 시스템이 이탈주민들이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현장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배되는 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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