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 표심 ①조용한 분노, 표로 말하다

입력 2011-10-28 19:38:23

20~40 표심 ①조용한 분노, 표로 말하다

20~40은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조용한 분노를 표로 말했다.

박원순 범야권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 이 과정에서 드러난 20~40대의 표심은 '조용하지만 무서운 분노'로 요약된다.

길거리로 떠들썩하게 나서기보다 투표장에서 조용히 표로 여당을 외면했다.

지난 15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서울을 점령하라' 시위는 오후 10시께 대한문 앞에서 끝났다.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라는 구호를 앞세운 이 집회는 애초 밤새워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시간을 채우지 못했고 종료 당시 참가 인원도 경찰 추산 600여명, 주최 측 추산 1천명 수준이었다.

이 시위는 전 세계 80여개국 9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열렸다. 양극화 시대 하층부의 분노 표출 시위가 한국으로까지 번질지를 살펴볼 만한 중요한 시위였지만 예상과 달리 조용하게 끝난 셈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거리로 나섰던 20~40대는 우리나라에선 조용히 투표장으로 움직였다.

20대 대학생들은 등교에 앞서 아침 일찍 투표소에 들렀다. 투표 인증샷을 지인들에게 보내 투표를 독려했다.

30~40대 넥타이 부대는 퇴근 후 대거 투표소로 몰려 박 후보의 시장 당선을 결정지었다.

방송3사의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에 나타난 세대별 지지율을 보면 투표장에 대거 나타난 20~40대의 표심이 정부·여당에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20대 중 박 후보 지지율은 69.3%로 나경원 후보(30.1%)의 배를 넘었다.

30대와 40대의 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도 75.8%, 66.8%로 압도적이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0대 42.5%, 30대 40.4%, 40대 50.6%로 모두 정동영 후보를 크게 앞섰다.

그랬던 20~40이 '바꿔보자'며 투표소로 몰린 이유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현상에 원인이 있다는 시각이 많다.

20대는 취업, 30대는 보육, 40대는 퇴직과 노후 문제 등 이들 세대를 어렵게 하는 변수는 도처에 널려 있다.

물가 급등에 따른 식비 상승, 전세난에 따른 주거비 급등은 서민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이구백(20대 90%는 백수), 메뚜기 인턴(인턴만 옮겨다니는 젊은 세대), 취집(취업 대신 시집), 삼초땡(30대초 퇴직), 동태(한겨울에 명퇴),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자) 등 이들 세대가 자신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신조어는 날로 늘어만 간다.

2000년대 학번인 20대는 대부분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이지만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실업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는 세대다.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라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려다간 휴학을 밥먹듯이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표현은 이제 사전에서 없애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30대는 오히려 20대보다 야당 성향이 강하다. 최근 진행된 역대 선거에서 야당에 가장 강한 지지를 보낸 세대 중 하나다. 90년대 학번인 이들은 학창 시절에 워드 프로세서를 활용해 리포트를 처음으로 작성했다. 최근 선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효율적으로 다룬다.

40대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로 1980년대 말 민주화 시위의 경험이 있다. 한때 저항을 주도했던 세대다. 경제 호황기에 직장은 어렵지 않게 들어갔지만 전셋값과 물가 급등,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 고통을 몸으로 겪으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은) 20~40대 연령층이 처해 있는 삶의 조건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며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조사 결과, 시민이 가장 중요시하는 정책과제로 일자리, 교육격차, 주거불안 등의 문제가 꼽혔다. 이 문제들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것이 이들 연령층"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 문제들에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를 표방하는 후보에 호감을 가지는 반면 특권층만을 위한 정치인이라고 인지되는 순간 지지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나경원 후보의 '억대 피부관리설' 등은 개인의 도덕성 차원이 아니라 기득권층 전반의 문제로 인식됐다"고 분석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도 "20~40대는 50~60대에 비해서 정치적인 관심이 높지 않고 이념적으로도 분명한 방향을 갖지 않은 세대임에도 거의 몰표가 나왔다"며 "먹고사는 문제가 직결된 이들 세대의 어려운 삶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지적했다. "결국에는 '경제도 못 잡고 서민도 못 잡은' 현 정부의 실정이 밑바탕에 있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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