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책] 편안한 소파에 누워 떠나는 세계 갤러리 투어

입력 2011-10-22 08:00:00

사진을 찾아 떠나다/글과 사진 채승우/위즈덤하우스 펴냄

#사진을 찾아 떠나다/글과 사진 채승우/위즈덤하우스 펴냄

나만의 여행 방법이 있다면,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면 꼭 한두 권의 책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일종의 안전장치라고나 할까. 여행이 재미없더라도 책에 대한 기억은 남기 마련이다. 여행의 보험을 들어두는 셈이다.

3박4일 짧은 일본 여행에 앞서 책장 앞에 섰다. 마땅히 고민할 시간조차 넉넉지 않았던 나는, 이 책을 골랐다. 지나치게 단선적인 제목이긴 했지만 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기대없이 여행 트렁크 속에 구겨넣었다.

여행지 첫날 저녁, 숙소에서 책을 꺼내보았다. 고백하건데 사진의 예술세계에 대해서는 상식이 부족하다. 아니,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한 사진 업체는 독일에서 1초에 500장씩 셔터가 눌려졌다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초당 500장씩 태어나는 사진, 그 수많은 사진 속에서 예술과 그냥 사진은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이 책은 저자가 사진을 찾아 유럽으로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여행지에서 읽는 여행의 이야기라니. 한 발 더 가까운 기분으로 책 속 여행을 시작했다.

저자는 프랑스 오르세에서 사진의 탄생을 보기도 하고, 회화와 사진이 만나던 순간을 19세기 파리에서 발견한다. 독일에서 세계 최대 사진영상비전 쾰른 포토키나를 둘러보기도 하고 영국에서 매그넘 워크숍에 참가한다. 호텔 방 안에 편안한 자세로 유럽의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사실 2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대구사진비엔날레. 그 속에서 길을 잃기 일쑤였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보도사진에 익숙하던 내 눈은 현대 실험정신이 높은 사진 앞에서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헤맨다. 눈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아직은 분석과 이해를 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필요한 공부'였던 터다. 이 책은 현대미술의 가장 최신 무대에서 사진 이미지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그 흐름을 정리해준다. 유럽 사진미술관 앞에서 발품팔 것 없이 말이다.

사진은 일상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초현실주의적 지각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 일간지 사진기자이기도 한 저자는 여러 명의 사진가, 그리고 전시를 보며 회화의 흐름과 사진의 등장,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미술시장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게 된 사진에 대해 말해준다.

3박4일간 이 책을 두 번쯤 읽었다. 그리고 저자가 안내해주는 방법에 따라 도쿄국립미술관과 모리미술관, 오페라시티갤러리를 둘러보았다. 때로는 여러 가지 전시를 하나의 시각으로 관통하며 읽어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은 또다른 여행의 재미를 선물해주었다.

누구나 저 자리, 저 시간에 저 사진기로 찍으면 똑같은 작품이 나올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진작가와 일반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느 사진작가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자리에, 달이 뜨는 광경을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시간, 그 시간이 차이가 아닐까요."

단순하지만 명쾌한 대답인 것 같다. 기계와 예술, 위기와 기회의 경계에 서 있는 사진은, 여전히 영혼을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다. 363쪽, 1만5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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