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 "꼬마 변호사지만 노동계 대표(?) 변호사"

입력 2011-10-21 07:32:29

김형동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법률원 실장

대학시절 노동운동을 하다 이 나라 노동자들의 변호를 맡겠다며 사법시험을 패스한 것은 예측 가능한 스토리가 아니었다. 어영부영하다 방황했고 졸업에 임박해서야 적성을 찾은 그 누구나의 스토리였다.

한국노총에서 법률 지원을 총괄하고 있는 김형동(37) 중앙법률원 실장. 그는 "IMF 언저리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기웃거렸을 고시 준비에 나섰고, 법이라는 것이 현실적이고 논리적이지만 매력적이기도 하구나 느끼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1999년 대학 4년 때부터 준비해 2003년 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공부도 직업이다. 하루 8시간씩 꾸준히 하니까 어느 날 합격해 있더라"고 했다.

2년 간의 연수원 성적이 "좋지 않았다(웃음)"고 솔직히 털어놓은 그는 2006년 한국노총 정규직 변호사로 뽑힌다. 직급과 직책이 있는 노동조합 부문 1호 변호사다.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 법률담당도 생각해봤지만 그는 "치열하지만 치사하기도 한 조직문화가 싫었다"고 했다. 사내(社內)정치가 만만찮다는 얘기같았다.

요즘 김 실장은 기분좋게 바쁘다고 했다. 한노총 1호 변호사로 등장하자 당구장 아저씨, 분식점 주인, 포장마차 창업자 등이 몰려와 법률자문을 구했다. 노조 소속이 아닌 그들이지만 있는 그대로 자문을 해줬다. 그러니 일은 점점 많아졌고 자신만의 '특수 분야'가 생겼다. 나쁜 약자가 아닌 선한 약자, 좋은 고용주, 힘없는 노동자의 일이 그에게 맡겨졌다.

"저는 어리고 경험도 적죠. 법조계에서 저는 새까만 후배입니다. 새끼 변호사죠. 하지만 대형로펌이나 대기업을 상대하면 저는 그들과 맞서는 상대의 대표 변호사가 됩니다. 전문가적 소양을 누구보다 빨리 많이 키우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요."

역량이 상품성이 되는 사회다. '자신만의 가치'는 조직에도,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시점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각종 노동정책에 크고 작게 개입하고 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도 그의 손을 거쳤다. 어쩌면 한국의 노동계를 대표하는 변호사가 될 수도 있다. 그의 표현대로 "제가 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널려있는 것 아닌가."

그의 철부지 대학시절을 들추며 요즘 대학생들이 취업 걱정에 시달려 안타깝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는 "정부와 사회와 기업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세계의 우수한 유수의 대학생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실력을 배출할 곳이 막혔다는 안타까움이었다. 후배들이 무대를 넓혀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도 주먹이 아니라 논리의 싸움입니다. 왜 한노총에 갔느냐는 물음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저는 지금의 제 일에 만족하고 있고, 재미도 보람도 가득합니다."

김 실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안동초교, 경덕중, 안동고(42회)를 거쳐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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