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마을을 바꾼다… 주민도 풍경도 예술로

입력 2011-10-15 08:00:00

2009년 시작된 '마을미술 프로젝트' 예술동네로 되살아나 관광 명소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레고블럭같은 작은 슬레이트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레고블럭같은 작은 슬레이트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인 감천문화마을은 예술이 생활과 어우러지면서 전국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대룡마을에서 11년째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김미희씨는 낯선이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싫은 내색 없이 차 한잔을 권했다. 김 작가는
대룡마을에서 11년째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김미희씨는 낯선이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싫은 내색 없이 차 한잔을 권했다. 김 작가는 "개인의 사적 거주공간인만큼 예의만 지켜준다면 좋겠다"고 했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레고블럭같은 작은 슬레이트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레고블럭같은 작은 슬레이트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인 감천문화마을은 예술이 생활과 어우러지면서 전국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1957년 감천마을 모습.
1957년 감천마을 모습.

도시의 달동네와 농촌의 외딴 마을 등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들이 살맛나는 예술 동네로 거듭나면서 '관광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시멘트빛 일색의 우중충한 도심에 색깔을 입히고, 잡풀 무성한 시골 외딴 골목길에 조형물을 세워 삶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네를 가꾸고 있는 것. 마을에 '예술'을 입히는 주인공은 전문 미술인들 뿐만이 아니다.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도, 초등학생 꼬맹이도 함께 손길을 보태 철저한 '주민 참여형'으로 이뤄진다. 자칫 생활과 동떨어지기 쉬운 예술이 사람들 속으로 걸어오면서 풍경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얼굴까지 한결 밝아졌다.

◆미로미로 골목길 감천문화마을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 이곳은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레고블럭같은 작은 슬레이트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다. 아직도 우물과 공동화장실을 사용할 정도로 낙후된 지역.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은 폭이 1m 남짓이고, 좁은 곳은 심지어 사람 1명이 겨우 지나갈수 있을 정도다. 구석구석에는 시멘트벽을 따라 검초록빛 이끼들이 축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고, 어느 집의 TV소리, 아기의 울음소리가 여과없이 들려올 정도로 집들이 밀집해 있다.

하지만 이곳은 블로거들 사이에 예쁜 사진을 찍을수 있는 멋진 '출사지'로 소문났다. 지난해 '미로미로(美路迷路) 골목길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과의 소통을 시도하면서 지금은 주말이면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골목길 입구에 위치한 아트숍에서 1천원을 주고 지도를 하나 구입한 뒤 나뭇판자를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예쁜 화살표를 따라가다보면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숨은 보물을 찾는 재미라고나할까?

옥상에 마치 비둘기떼처럼 내려앉은 새 모양의 조형물과 동네길을 그대로 뒤집어놓은 벽화가 눈길을 끈다. 모퉁이 벽을 차지하고 있는 '영원'이라는 작품은 버려진 부품을 활용한 리싸이클링 아트로 주민참여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어둠의 집''빛의 집''평화의 집''북까페-흔적' 등의 작품이 이색적인 풍경을 눈 앞에 펼쳐놓는다. .

굳이 미술작품만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담쟁이 넝쿨도, 목욕 바구니를 들고가는 할머니의 모습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 건너편 '건강탕'이라는 목욕탕 굴뚝도, 빨간 고무대야에 예쁘게 심은 여린 상춧잎도 슬며시 미소가 피어오르게 만드는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 '하늘마루'에 오르면 마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각 작품 포인트마다 놓여있는 스탬프 7개를 모두 모아오면 엽서 3장을 주거나 사진 1장을 인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소소한 재미를 누릴 수 있는 것이 감천문화마을의 매력이다.

◆용의 전설이 깃든 기장군 대룡마을

부산 기장군 장안읍 대룡마을(오리). 이곳은 '지붕없는 미술관'이다. 시골길 곳곳에서 벽화속 담쟁이 넝쿨과, 해바라기, 머리가 다섯개 붙은 우주인을 만날 수 있다. 춤을 추는 듯한 아프리카 여인네는 정갈하게 정리된 미술관이 아니라 시골길 풀섶 가운데 아무렇게나 서 있고, 벽 모퉁이에 놓은 '스스로의 바람'이라는 조각품은 흙담과 그를 덮은 호박 넝쿨과 어우러져 더욱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곳은 지난 2007년 마을 이름을 둘러싼 설화를 특화상품으로 각색해 '전국 마을 보물찾기 대화'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사실 대룡마을 주변의 동네 이름에는 모두 '용'(龍)자가 들어간다. 옛날 마을 앞 큰 연못에 어미 용이 아들 둘과 딸 둘을 데리고 살았는데 어느날부터 물이 줄어들며 연못은 함께 살기에 너무 좁아지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래서 자식들은 인근 기룡마을, 용소마을로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 이름에 모두 '용'이 들어가게 됐다는 것. 어미 용이 있던 곳이 바로 대룡마을인데, 헤어진 자식을 그리워하며 울다 쓰러져 바위로 변한 것이 '용바위'란다. 대룡마을은 이같은 설화와 연계해 마을을 꾸미는데도 다양한 용 형상의 조형물을 활용했다.

마을에는 이곳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집도 여러곳이다. 벌써 11년째 살고 있다는 도예가이자 조각가인 김미희 작가는 "낯선 이들이 찾아와 함께 차 한잔을 즐기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다"고 했다.

대룡마을의 최고 인기 포인트는 '무인카페'와 'SPACE 223 체험장'이다. 무인카페는 말 그대로 찾아온 이들이 직접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지키고 서 있는 이는 없지만 주민들의 손때가 묻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고 아늑하게 다가온다. 이곳을 찾은 수 많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추억의 메모를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커피값은 출입문 옆에 놓인 큰 박스에 넣으면 된다. SPACE 223 체험장에서는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해볼 수 있는데 미리 홈페이지(www.daeryong.kr)을 통해 예악을 하고 가면 더욱 좋다.

◆천편일률적인 벽화의 한계 극복이 관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시작된 생활공간 공공미술 가꾸기 사업이다. 역사, 지리, 생태, 문화적 가치가 잠재되어 있는 마을과 거점시설을 공공미술을 통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한편 예술가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낳고 있다. 2009년에는 전국 24곳, 2010년에는 15곳이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으며, 올해는 영천을 비롯해 11곳에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아름다운 마을로 입소문이 난 대구 인근의 울산 신화마을, 안동 신세마을 등도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변신한 곳들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앞다퉈 '예술'을 외치면서 천편일률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사실 공공미술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벽화다. 그런데 환경미화 수준에 머무른 벽화가 많은데다 꽃, 바다, 만화 캐릭터 등 상투적인 이미지나 키치미술로 오히려 '생뚱맞음'을 자아내는 경우도 많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룡마을에서 만난 김미희 작가는 "사실 대룡마을은 손대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이나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너무 꾸미기에 치중한 나머지 그 자연스러운 맛이 사라진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부분"이라며 "전국의 많은 벽화마을 역시 비슷한 풍경으로 흐르고 있고 특색이 없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사실 영천 행복프로젝트에서도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이 점이다.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박수진 감독은 "프로젝트 콘셉트를 신 몽유도원도로 붙이면서 이곳을 도시의 피로감을 풀 수 있는 마음의 고향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이 때문에 구상채색벽화와 키치적 작품은 가급적 배제하는 대신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고, 산수벽화, 테라코타 벽화, 탁본벽화 등을 통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중점을 뒀으며, 전기나 인위적인 기계음과 인공빛 등 주변 생태에 영향을 끼치는 작품 역시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사람과 예술이 함께 숨쉬는 공간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결국 '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이곳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 대룡마을을 다니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사람'이었다. 고구마와 찬물 한 그릇을 내어주며 신세타령을 하는 할머니, 사진 촬영 때문에 이것저것 번거로운 부탁을 해도 웃는 얼굴로 지켜보며 "동네 구경 잘 했느냐?"고 물어보는 할아버지, 낯선이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주며 차 한잔을 대접해주는 작가가 있어 여행이 즐거웠다.

장세옥(63'여'부산 사상구 감천2동) 씨는 "못사는 동네에 자꾸 사람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구경하듯 들여다보니 자존심 상한다는 주민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들락거려야 사는 것 같지 않냐"며 "입소문 잘 내줘 더 많이 오라고 해주이소"라고 했다.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에서 가장 크게 불거지는 문제가 주민들과 작가들과의 소통 부재다. 일부 주민들은 "예술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동네 분위기 망처놓는다"며 드러내놓고 싫어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가상리 역시 벌써 위태위태한 순간을 여러번 넘겼다. 가상리 새마을지도자인 권효락(56)씨는 "첫 작품 시작부터 담장을 허무니 마을 어르신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여 혼났다"며 "겨우 설명을 하고 달래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제는 동네가 예쁘게 변해가는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니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셨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결국 영천 행복프로젝트의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마을 주민들이다.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오는 손님들을 맞아주고 이들과의 관계를 맺어나가느냐가 마을 성쇠의 키를 쥐고 있는 것. 박 감독은 "마을 한가운데 설치될 '아트마켓'을 통해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마을주민이 만든 농작물과 규방공예 작품 등을 판매해 일정부분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했고, 풍양정이라는 고택(정자)을 활용해 '아트스테이'가 가능한 프로그램도 만들었다"며 "하지만 이것이 잘 진행되려면 마을 주민의 역할이 제일 크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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