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둥지
길을 걷는데, 새 우는 소리가 아름다웠다. 눈길이 소리를 좇았더니, 우듬지 못 미치는 곳에 집 하나가 있었다. 고 조그만 것들이 자그마한 가지를 하나씩 물어 나르며 만들었을 터였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가만히 둥그스름한 둥지를 올려다보았다. 안에 몇 마리나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머리 하나가 삐죽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가느다란 가지 사이에 놓인 새집은 대부분 허공에 더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새는 떨어지지 않고 그 높은 곳에 가부좌를 튼 채 지저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위태 속의 안정감이라니. 대체 존재는 얼마나 가벼우며 터전은 얼마나 정교하기에. 순간, 내가 저 새보다도 못한 존재였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무거움과 허술함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 그건 새도 알고 있는 지혜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가 아니었다. 인간의 존재는 무겁다. 살아온 부덕의 시간만큼. 어쩌면 선험적인 부덕이 쌓여 인간의 체중을 만드는 건 아닐까. 새처럼 가볍고 자유롭게 살고 싶으나, 제 무게로 중력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사람의 내부에는, 그래서 묵직한 슬픔의 존재가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어나버렸기로 눈에 띄어야만 하는 존재의 몸피. 하루하루 살아감의 고단한 무게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갈수록 나날이 비대해지는 생의 환멸들. 그것들을 가득 껴입었기로 무거워진 나는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이었다.
길을 걷다 새 우는 소리가 들리면 눈길은 둥지를 더듬는다. 둥지는 정교해서 가볍고 가벼워서 정교했다. 새들은 인간과 다르게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몸소 보여준다. 허공에 의지해 살아가는 법을. 더 가볍고 더 편안하고 더 아름다운 일상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나는 인간이라는 무거운 존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상을 살고 싶다. 새처럼, 허공마저도 따뜻한 둥지가 되어주는 하루하루를.
이지후(대구 수성구 범어1동)
♥수필2-교복
덥거나 혹은 비오거나, 지난여름은 참 지루했다. 아침저녁은 서늘하지만 아직도 한낮은 덥다. 고3 아들이 교복을 춘추복으로 갈아입어 가을임을 실감한다. 마지막으로 입는 아들의 교복을 여느 때처럼 손질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의 학창 시절, 우리 집은 몹시도 가난해 고등학교에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울며불며 막무가내로 진학을 한다고 하긴 했지만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새 교복은 엄두도 못 내는 건 당연지사. 입학식이 있는 날에도 교복을 구하지 못해 까만색 옷을 입고 슬픈 입학식을 했다. 그날 밤, 졸업한 언니가 아랫마을에 있다는 걸 알고 무작정 찾아가 교복을 구하러 왔다고 하니, 열심히 공부하라며 교복을 내주었다.
몇 년 전, 아파트 헌옷 수거함 앞에 잘 손질된 교복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메모지에 '이 옷은 ○○고등학교 교복입니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고 써 놓은 고운 마음씨를 본 적이 있다. 수능을 치르고 졸업을 하고 나면, 아들 교복을 잘 손질해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겠다.
그 옛날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교복을 입고 가슴 뿌듯하게 등교하던 것을 기억하며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물려줘야겠다고 결심한다.
최순단(대구 수성구 만촌2동)
♥수필3-사랑하는 세 아이
세월이 눈 깜박할 사이 지나가버렸다.
고등학교 1학년, 바라만 보아도 예쁘고 착하게 커가는 큰아이. 둘째 중학교 3학년, 막둥이 초등학교 2학년, 어느새 커버린 애들을 보면서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옛말을 실감하며 돌아보니 내 나이 사십이 훌쩍 넘었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오빠 언니 사이에 막둥이 가방은 아직 크고 무거워 보인다. 환한 미소에 여름 내내 새까맣게 그을려 탔지만 내 눈엔 마냥 예쁘기만 하다. 한 배에서 나온 아이들이지만 성격은 다 다르다. 맏이는 듬직한 반면 둘째 딸아이는 여려서 속상하고, 막내는 힘이 넘친다.
어느 날, 막내가 "엄마, 학교 친구들이 놀려. 친구들이 나보고 얼굴이 하마 닮았대"라고 말했다. "걱정 마! 막둥이는 된장과 김치를 많이 먹어서 나중에 오빠처럼 언니처럼 예쁘게 키로 커진단다"며 위로해 주었다. 그 말에 금세 안심하는 눈치다. 요즈음은 줄넘기도 곧잘 하고 여름 동안 부쩍 자란 듯하다. 학교로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도 가을날의 열매처럼 영글어가길 기도해본다. 얘들아, 힘내! 사랑해~.
유막달(영천시 금호읍 냉천리)
♥시-한티 성지(聖地)에서 길을 묻다
구구구구 구구구구
구슬피 울어대는 비둘기 울음소리
푸른 신록 산골짝 새벽을 깨운다.
신앙의 샘터를 찾아 모여든
순교자의 절규가 메아리치는 한티 성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있나?
비둘기는 왜 저리도 슬피 울고
바람은 뭇 나뭇가지를 흔들어 대는가?
세상사는 왜 이렇게도 굴곡이 많고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 반환점을 지나 종착역으로 가는데
그대!
아직도 못다 이룬 헛된 꿈을 꾸고 있는가?
속세를 떠난 2박 3일의 시공간
산천초목 푸른 하늘 흰 구름 흘러가네.
산새소리 바람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이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이었구나!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인생의 또 다른 이정표를 간구하고 있다.
이곳 한티 성지에서.
제290차 ME(marriage encounter:부부일치 운동) 과정을 마치고
원상연(대구 수성구 사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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