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때문에 자살·우울증 예방·치유책도 역시 '가족'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새삼 곱씹어본다. 틈만 나면 속이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세상을 살며 그나마 가족, 즉 피붙이만이 믿을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데도 정작 제 몸을 살리고 있는 피의 중요성은 잘 모르고 산다. '사랑하니까' '가족이니까'라는 허울 아래 상처주고 비난하고 모욕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은 그래선 안 된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가족
한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정준구(74) 씨는 스스로 버티기 위해 봉사에 나섰다고 말한다. "아직 아내와 자식은 멀쩡하지만 형제와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죠.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는데 형제를 잃고 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자부심의 철옹성은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로 인해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스위스 바젤대 울리치 오스 교수팀이 1986년부터 2002년까지 16년간 25~104세 사이 미국인 3천617명을 조사한 결과, 자부심은 20대부터 점점 올라가기 시작해 60대에 최고에 이르지만 주로 가족을 잃는 상실의 아픔을 겪으며 점차 무너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스스로가 잘나고 똑똑해서 '대단한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지하고 보다듬고 격려해 줄 가족이 사라지면서 그런 자신감마저 사라진다는 것. 정 씨는 "아내와 자식이 마지막 버팀목"이라며 "가끔 눈물 나게 고맙다"고 했다.
키우기 힘들다며 아이 한 명만 낳는 세상. 하지만 형제, 자매가 없는 외톨이는 정신적 성장의 기회를 잃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특히 여자 형제는 다른 형제가 부정적이고 좌절감에 빠지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
여자 형제를 가진 청소년들은 외롭다든지,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 죄의식, 두려움 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남자 형제도 자기 형제나 누이들에게 조금 다른 형태로 영향을 미쳤다. 연구진은 "부모들은 형제끼리 다투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형제끼리 싸우는 것은 컸을 때 어떻게 갈등을 극복하고 감정을 조절할지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족, 그 애증의 대상
우리나라 성인 100명 중 15명은 자살에 대해 한 번쯤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으며, 3명은 시도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서울대 정신과 조맹제 교수와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팀이 18세 이상 성인 남녀 6천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자살하려고 하는 원인은 '가족 간의 갈등'이 가장 컸다. 이 밖에 ▷경제적인 문제 ▷별거 및 이혼 ▷심각한 질병 등의 순이었다. 자살시도를 한 사람들은 대부분 우울증, 알코올 오남용 등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나쁜 가정환경은 청소년 초기부터 우울증에 시달리게 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연구진이 1991~2001년 아이오와주 청소년 485명을 조사한 결과였다. 사회 부적응자 5명 중 1명이 청소년기에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특히 여자가 남자보다 가정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 경향이 더 컸다. 연구진은 "어릴 때 가정의 역경과 불행한 사건들이 10대 우울증의 주원인이 된다"며 "이들은 어른이 되는 준비 없이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자살 충동과 우울증의 주원인이 가족이었지만 치유책도 역시 가족이었다. 자살 충동 예방에는 친구보다 가족이나 이성친구가 훨씬 더 중요했다. 2009년 미국 워싱턴대 제임스 마짜 교수팀이 시애틀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마짜 교수는 "18, 19세 청소년들은 친구 관계와 상관없이 가족-이성친구와의 유대감을 통해 자살 충동을 떨쳐내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가족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자살 충동을 부르는 우울증에 걸린 가족을 도우려면 무조건 그 사람 편이 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과 과정을 따지고 고치려 하기보다 '네 편'임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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