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내 기억력이 나쁘다. 영화평론 모음집인데, 책 제목을 모르겠다. 글쓴이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책을 샀던 시기는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그것 또한 같은 날 구입한 음악 테이프가 재즈 건반연주자 정원영의 데뷔 앨범이니까 1990년대 초반쯤이라고 비추어 짐작한 사실일 뿐이다. 그 테이프는 지금 없다. 자주 듣다가 릴이 늘어나서 버리고, 같은 것을 CD로 또 사서 지금까지 즐겨 감상한다. 하지만 영화평론서는 대충 한 번 읽고 책장 어딘가에 꽂아두었다(라기보다 '처박아두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지만).
그 책에는 무슨 대학의 영화학과 교수이자 영화평론가라고 하는 분이 여러 해에 걸쳐 쓴 영화 관련 글이 수록되어 있었다. 말이 평론가며 교수지, 그 비평은 아마추어 영화 애호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감상문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결정적으로, '영화평론 외길인생 40년' 같은 낯 뜨거운 자화자찬까지 책 뒷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무슨 마(魔)가 씌어 책을 산 스스로를 책망하고서는 곧 내 인식 속에서 사라진 그 책이 필요한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박사 학위 논문 주제도 그렇고, 평소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정치 변동과 예술 평론의 상호관련성이다. 지금 기준에서 보자면 턱없이 허술한 비평 글이 지난 세대에 많았다. 그 까닭은 뭘까? 약 100년 전, 대부분의 장르가 서구에서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양식의 완성도나 분위기를 흉내 내는 수준에서 우리의 근대 예술은 출발했다. 초창기 예술 평론은 이러한 틀조차 갖추지 못했다. 문학, 미술, 음악 평론을 다룬 고문서를 뒤져보면, 제대로 된 비평은 없고 다만 같은 동인(同人)에 속한 작가들끼리 친우의 작품에 대한 헌사나 화답의 뜻에서 논평한 자료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비평이 가진 사회적 속성에 의해, 예술 평론은 첫째 저널리즘을 세우기 위한 언론 기사 형식의 글이 있고, 둘째 학문적 관심에서 비롯된 소논문 형식의 글도 있고, 셋째 평론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의 문체를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깃든 수필 형식의 글이 있다. 이 구분이 명확히 서고, 또 활성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해방, 전쟁, 경제발전, 민주화 시기를 각각의 전환점으로 삼으며 우리나라의 예술 평론도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런데 평론 수준의 발전 속도도 장르에 따라 차이가 있다. 문학이나 미술 또는 연극 비평의 경우는 형식적 완결성이 비교적 일찍 자리를 잡았는데, 영화나 음악(특히 대중음악) 평론은 최근 20년 동안에야 수준이 올라온 후발 주자다. 문학이나 미술은 대학에 학과가 일찍부터 생겼고 언론도 신춘문예, 공모전 등을 통해 평론을 일상적인 제도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영화나 대중음악은 사정이 달랐다.
지금 중장년층 독자라면 지금은 고인이 된 영화평론가 정영일을 기억할 것이다. 항상 검은 뿔테 안경에 후줄근한 옷차림이었던 그는 일요일 저녁마다 TV에 등장해서 영화 예고를 했다. "오늘 밤 이 영화 놓치시면 후회합니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이 떠돌던 그때보다 우리는 훨씬 많은 영화를 본다. 하지만 그때보다 재미있게 영화를 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낭만적인 그때 그 영화평론도 실은 별 내용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샀던 영화평론서의 저자도 정영일처럼 낭만적인 영화애호가였을 것이다.
1990년대에 이효인, 정성일, 이용관 같은 본격적인 영화평론가 세대가 등장하기 전에 영화 평론의 수준을 논증하려는 자료들을 모아야 되는데 쉽지 않다. 우리의 지나온 평론 역사를 공부하는데 꽤 옛날의 문헌은 찾을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내가 쓰는 이 칼럼의 첫 연재였던 "가장 최근의 옛날이야기"에서 풀어놓았던 역설도 이런 것이었다.
내 서재 책더미 속 어디엔가 있었을 그 책은 아마도 연례행사로 헌책방에 내다파는 길을 따라 사라졌을 것이다. 내 만오천 권의 라이브러리에 끼일 '자격'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책이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엔 다른 어떤 명저보다도 내게 더 절실했다. 내 기준대로 따지자면, 내가 쓰는 글과 책도 내 책장에 꽂힐 자격이 안 되는 것 아닐까? 나는 반성해야 한다. 좋은 책과 나쁜 책, 혹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이 모두가 내게 스승이다.
윤규홍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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