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도시에서 천막 치고 질긴 삶 지뢰밭 사이사이 희망의 터전 가꿔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고대엔 간다라 문화가 태동했고 중세엔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카불국립박물관은 아프간 전쟁 전엔 30만 개의 유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10만 개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탈레반 정권이 이슬람 원리주의에 따라 타 종교를 박해했기 때문이다. 2001년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이 훼손됐다. 서기 2세기 쿠샨왕조부터 간다라 양식까지 20여만 점 훼손유물 가운데 불상 등 불교유적이 70%에 이른다고 한다.
◆전쟁으로 점철된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전쟁으로 점철됐다. 1978년 구 소련파 세력이 쿠데타로 왕정을 끝내면서 '아프간 전쟁'이 촉발됐다. 사회주의 이념 아래 무리하게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다가 이에 반발한 이슬람연합과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듬해엔 구 소련이 개입했다. 전쟁은 구 소련과 정부군, 이슬람과 반정부군이 각각 편을 나눠 9년 동안 이어졌다. 1989년 이슬람연합이 구 소련군을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슬람연합 내에서 다시 권력투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내전 상황은 계속됐다.
처음엔 파슈툰족을 대표하는 탈레반이 헤게모니를 잡고 여타 종족의 연합체인 북부동맹과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2003년 파슈툰 탈레반이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전세가 뒤집혔다. 파슈툰의 추락엔 9'11테러의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데 대한 미국의 보복이 있었다.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을 배우는 학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을 대표하는 탈레반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해서 다른 종족의 연합체인 북부동맹과 내전을 계속해서 벌였다.
◆버려진 탱크 등 전쟁 잔해
아프가니스탄의 도로 곳곳에는 전쟁 때 쓰던 탱크나 트럭의 잔해가 보인다. 수도 카불에서 조금 떨어진 하자르족의 마을엔 마을 전체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하자르족은 칭기즈칸의 후예들로 탈레반은 예전에 이 지역을 몰살시켰던 칭기즈칸에 대한 앙갚음으로 한 마을을 완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렇게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이 폭격을 맞아 반은 허물어져 버리고, 남은 반도 벽이나 창문도 없어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었지만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고향을 차마 버리고 가지 못해서이다.
이곳 사람들은 다시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하는 지뢰사고는 하루에 20건 이상이나 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높은 산언저리까지 폭격으로 잃어버린 터에 다시 보금자리를 만드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차나 이동수단도 없이 당나귀에 돌을 실어 산 위에까지 옮겨 다니면서 맨손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 비가 오지 않던 아프간에 탈레반이 물러가고 나서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하늘도 아프가니스탄에 새로운 싹이 나길 바라는 것이리라.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
전쟁이 있고 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일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동네 광장은 전쟁의 잔해로 뒤덮여 있고, 그저 밝고 해맑은 아이들이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지뢰밭에서 팔, 다리를 잃어 불구가 된 아이들도 있고, 먹을 것이 없다 보니 심한 악취가 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물건들이나 생필품들을 주워다가 시장에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 부모를 전쟁통에 잃고 갑자기 가장이 된 아이들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카펫 공장에서 일하거나 시장에서 심부름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카불강을 끼고 있는 타이타닉시장은 한때 번성했다. 루비, 에메랄드 등 보석시장으로도 유명했다. 예전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장보러 나온 여성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차도르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낸 여성도 간혹 보였다. '타이타닉'이란 이름은 내전 때문에 단번에 성쇠(盛衰)가 뒤바뀌었다고 해서 침몰한 여객선인 '타이타닉호'에 빗대어 지어졌다.
반면에 '함맘'이라는 대중목욕탕은 탈레반 정권의 추락 덕분에 소생했다. '나체를 드러내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맞지 않다'며 폐쇄되었지만 다시 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목욕탕이라 해도 다들 옷을 입고 목욕을 한다. 일부 부유층은 칸이 쳐진 독탕에서 옷을 벗고 씻기도 한다. 때를 불리는 큰 탕은 없고 전부 한쪽에서 물을 조금씩 부어서 씻는다. 목욕탕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물을 떠서 씻는데 한 컵 정도의 물로 세수를 다 마친다. 하지만 식수가 오염돼 위생은커녕 생명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다.
글'사진 도용복 대구예술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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