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파군재에서

입력 2011-10-05 07:47:51

낮 시간에 파군재 삼거리를 오를 때마다 차의 속도를 늦추곤 한다. 되도록 파계사 쪽으로 좌회전 신호가 떨어져 있지 않기를 바라서다. 행여 좌회전 신호가 켜져 있으면 일부러 속도를 낮추어서 가끔은 뒤따라오는 차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랑곳 않고 이렇게 신호대기를 자청하는 것은 노점을 하는 아저씨를 보기 위해서다. 노점이라고 해봐야 작은 손수레로 끌고 온 박스 두 개에 담긴 과자류가 전부이고 그나마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하지만 이른 퇴근길이나 휴일에 그 길을 지나칠 때면 마치 버릇처럼 브레이크에 발을 올린다.

신산한 바람이 불던 칠 년 전쯤 어느 겨울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짧은 파계사 쪽 좌회전 신호에 조바심을 내며 오르던 차 사이로 한 소녀가 플라스틱 바구니에 과자를 담아 팔고 있었다. 찬바람에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열 살 남짓한 소녀였다. 소녀는 아버지가 잠시 쉬는 동안 아버지를 대신해서 과자를 팔고 있었다. 아버지는 중앙분리대 사이의 화단에 앉아 안쓰러운 눈길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창문을 내려 소녀가 파는 과자 한 봉지를 샀다. 그 아버지의 왼쪽 팔소매가 허공에 날리는 것을 보았던 연민이었을까? 아니 화단 한구석에 놓인 찬 도시락을 본 동정이었을까? 집으로 오는 동안 소녀의 모습과 그 아버지(어쩌면 아버지가 아닐지 모른다)의 모습이 머릿속을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늘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니셨다. 혼자 힘으로 세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못난 자식의 눈에는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단 하루도 자식의 등록금을 미루어본 적이 없는 어머니였지만 자식은 그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이 싫었다. 아니 학교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어머니를 마주칠 때면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달아나곤 했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에 몸을 떨면서도 정신병을 앓아가던 어머니의 삶은 그저 당신의 삶이라고 애써 외면했었다. 아니 오늘 이 시간 작은 방에서 홀로 식사를 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어쩌면 지금도 외면하고 있는지 모른다. 당신이 고향을 떠나 살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변명 삼으며 말이다.

소녀는 부끄럽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남루한 옷이, 아버지가 가진 그 왼팔의 장애가. 그 후로 한번도 그 소녀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소녀는 고등학생이 되었거나 졸업을 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소녀를 보고 싶다. 승리보다 값진 패배로 파군재에 우뚝 선 신숭겸 장군의 동상 위로 좋은 가을이 물들고 있는 이때면.  

전태흥(미래티엔씨 대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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