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자들 새 돈줄 된 '정수기 깡'

입력 2011-09-30 10:32:53

빚에 허덕이고 있는 서민들이 '신종 깡'의 세계로 내몰리고 있다.

금융권 대출이 힘겨워지면서 고가의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을 렌탈한 뒤 바로 헐값으로 전문 브로커에게 팔아 넘기는 이른바 '정수기깡'이 성행하고 있는 것.

사무실, 화장실 등 장소만 확보하면 손쉽게 렌탈이 가능해 대구 도심 곳곳으로 정수기깡이 퍼지고 있다.

정수기깡을 했다는 A씨는 "정수기는 아무리 신용이 낮고 전과가 있더라도 렌탈이 가능하다"며 "급전이 필요한 경우 직원들끼리 짜고 정수기깡으로 돈을 마련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보통 300만원 상당의 정수기를 회사별로 여러대 렌탈한 뒤 브로커에게 넘기면 손쉽게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

또 300만원 상당의 정수기 렌탈료가 월 3만원에 불과해 당장 부담이 없는데다 정수기 회사별 점검 기간도 3개월이나 6개월 주기로 쉽게 들킬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브로커들은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다양한 지역을 옮겨다니며 정수기 세탁에 나서고 있다.

A씨는 "오른 전세금을 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은행 신용대출을 문의했으나 둘이 합쳐 300만원이 고작이라는 말에 맥이 빠졌다. 그러다 정수기깡 얘기를 듣고 브로커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 깡이 성행하면서 아예 깡을 목적으로 원룸 등을 임대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은 장소만 있으면 언제나 쉽게 렌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닥치는 대로 렌탈하면 브로커들에게 반값에 넘긴다 하더라도 손쉽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직장인 B씨는 "빚을 갚기 위해 아내와 함께 은행 신용대출을 문의했으나 둘이 합쳐도 턱없이 낮은 금액밖에 대출이 안 돼 낙담했다"며 "친구의 정수기깡 얘기를 듣고 월세로 원룸을 임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수기깡을 마구잡이로 하다 보면 렌탈료 역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수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월 3만, 4만원의 렌탈료가 쌓이다 보면 보통 1년을 넘기기 힘들지만 한번 덫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들다. 카드 돌려막기나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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