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조장의 끝

입력 2011-09-29 07:04:13

가을이 익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들판은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논배미에 가까이 가서 보면 이 논이나 저 논이나 벼들의 키가 가지런하다. 이삭의 무게로 고개를 숙인 각도조차 한결같다. 문득 놀라움에, 내리비치는 햇살을 따라 하늘로 눈길을 돌린다. 눈이 부시다. 태양과 하늘의 공평함에 눈이 부신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하늘과 땅은 어떤 종류를 특별히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더니 지금 들판에서 그 현장을 본다. 햇살이 고루고루 비치기에 벼의 키 크기가 저리 고르고, 하늘에서 뿌려주는 빗줄기도 이곳저곳이 두루 같기에 이삭의 무게조차 저렇게 평등한 것이리라. 저 천지자연의 공평무사함에 기대어 제 욕심만 채우는 자를 두고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라고 손가락질했을 것이고 또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며 제 결백을 하소연하기도 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공평과 공정에 목마르다. 지난해 난데없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낯선 책이 초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 그러하고, 올여름 느닷없이 안철수 현상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던 것도 그러하다. 안철수 현상을 두고 좌파라느니 우파라느니 편을 가르는 분석들도 있었지만 실은 유독 이 정권 들어 심각해진 권력의 사유화와 공공성의 훼손에 대한 반발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문득 조장(助長)의 고사가 떠오른다. 옛날 중국 땅에 오랜 가뭄이 들었다. 봄에 심은 묘들이 크지를 못하고 말라 죽을 판이었다. 하루는 정신이 맑지 못한 노인이 들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서 "아이고, 힘들구나. 내가 묘를 키워주고 왔네"라는 것이다. 자식들이 놀라 들로 나가보니 묘를 키워준답시고 뿌리를 뽑아 올려, 온 들판의 싹들이 말라죽게 되었더라는 이야기다. 오늘날까지도 나쁜 짓을 돕는 것을 "조장한다"라고 쓰는 어투가 된 내력이다.

조장의 고사는 사사로움과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세상의 어려움을 '내'가 나서서 널리 바로잡겠다는 설익은 영웅주의와, 사물의 이치를 모르는 채 덤벼드는 무지의 낭패가 이 고사 속에 들어있다. 조장이 무서운 것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 더 나쁜 해악을 상대방에게 끼친다는 점에 있다.

지금 이 땅 도처에는 조장의 흔적들이 낭자하다. 흐르는 강을 막느라 억지공사를 한 탓에 끊임없이 관리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이 눈에 띄는 조장의 흔적이요, 경제를 발전시킨다면서 재벌들만 배불려 이젠 국민의 복지를 그들 자선에 기대야 하는 꼴로 만든 것이 또 다른 조장의 사례다.

듣기로 대통령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한다. 문제는 그 근로와 수고로움의 정체다. 그의 말투를 놓고 보면 짐작 가는 데가 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투가 그러하다. 이 말투를 두고 사람들은 그저 조롱조로 비웃고 마는데, 실은 대통령의 정체가 들어있는 말이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속에는 오만과 무지, 곧 조장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다. 맹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비평한 바다.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라는 오만한 말투와 낯빛이 권력자의 표정에 비치면 올바른 조언자들은 천리만리 떠나버리고 만다. 그 빈자리를 아첨하고 굽신거리며 아양 떠는 자들이 메우게 마련이다. 이 따위 아첨하고 아양 떠는 자들과 함께한다면, 과연 나라를 잘 다스려보고자 한들 그게 가능키나 하겠는가?"(??之聲音顔色, 距人於千里之外. 則讒諂面諛之人至矣. 與讒諂面諛之人居, 國欲治, 可得乎! '맹자')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라는 말 한마디 속에, 독선과 무지와 어설픈 영웅주의가 오롯하다. 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힘껏 일한다고 자부하기에 안 되는 일과 잘못된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리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공공성을 훼손하는 이 정권의 행태도 실은 이 '나'속에 들어있다. 이 정권 들어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이 내내 불법과 탈법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이유도 이 속에 들어있다. 나를 깨우쳐 공공성과 공정성을 함께 실현할 사람이 아니라, '나 개인'의 아이디어를 집행할 손이나 발과 같은 인간만 필요로 할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장의 끝이다. 대통령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수고롭다는데, 국민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피폐하다. 옛이야기 속의 사태 역시 똑같았다. 노인은 피곤한데 그쳤지만, 들판의 묘들은 말라죽었다.

배병삼(영산대 교수,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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