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역사는 우리 편'이란 오만을 경계하라

입력 2011-09-22 10:58:23

세상이 온통 안철수다. 구글에 '안철수'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관련 문건이 무려 3천800만 개가 넘게 뜬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안철수 현상'의 포로가 됐다. 다음 대통령은 안철수라는 소리는 이제 뜬금없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정치인으로서의 안철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언론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그를 알아내려는 시도가 꼬리를 물고 있지만 아직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이다. 그가 언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밝히기는 했지만 너무 단편적이다. 그의 생각의 전모를 알기에는 퍼즐 조각이 너무 적다. 따라서 이 글 역시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도로(徒勞)를 감행하는 것은 그의 말 한마디가 강한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넷 신문을 통해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 집권세력"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현 집권세력을 보면서 역사가) 거꾸로 갈 수 있구나 생각했다"고도 했다. 이를 일반론적으로 표현한다면 대략 이렇게 될 것이다. "역사는 진보하며 이를 가로막는 세력은 도태시켜야 한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단순하게 말하면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란 믿음일 것이다. 이는 진실인 듯하다. 빈부격차 심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의 삶의 조건은 기아와 질병, 무지와 미신이 지배하던 중세보다 분명히 나아졌다. 이는 진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베토벤의 고전 음악은 조지 거쉰의 현대 음악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피카소의 추상화보다 시대적으로 뒤져 있다. 그렇다면 거쉰의 음악과 피카소의 그림은 베토벤의 음악과 알타미라 동굴 벽화보다 진보한 것일까. 그렇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역사가 진보하는가는 이처럼 답하기 쉽지 않은 물음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란 것은 없다. 사실의 선택과 해석을 거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역사다. 동일한 사실(史實)을 놓고 온갖 해석과 이론이 난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역사의 진보'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탄생과 시장경제의 확산은 사회주의 진영에서 보면 없어져야 할 역사의 쓰레기이지만 자본주의 진영에서 보면 진보다. 그래서 역사의 진보 또는 퇴보를 얘기할 때 우리는 한없이 겸허해져야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역사는 진보시켜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비약되기 쉽다는 점이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면 진보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며 그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는 자연스럽게 생각해낼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역사는 우리 편'이라는 함정에 빠져들기 쉽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역사를 망쳐 놓은 수많은 악행의 근원인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사고방식으로 가는 첩경이다.('인간의 역사' 시릴 아이돈)

흐루시초프는 1956년 모스크바에서 서방 외교관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초대에 응하지도 말고 우리를 초대하지도 말라. 당신들이 좋아하든 말든 역사는 우리 편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땅속에 묻어버릴 것이다."(정작 땅속에 묻힌 것은 바로 소련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 편은 언제나 옳다"는 무오류성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이런 신화의 세계에서는 우리와 다른 생각은 그것이 무엇이든 '잘못된 인식'이고 '역사의 반동'일 뿐이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

안철수 씨가 이런 위험한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말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보다 더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망의 표현일 것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말처럼 한나라당이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안 씨의 말에 이렇게 시비(?)를 거는 것은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은 자신도 모르게 '역사는 우리 편'이라는 오만에 빠뜨릴 수도 있음을 경계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다. 기우(杞憂)요 비약(飛躍)이며 곡해(曲解)인가? 그랬으면 좋겠다.

鄭敬勳(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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