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날 아침 앞산, 무술 고수들이 모여든다…태극권

입력 2011-09-19 10:45:24

예정해(76)씨는 태극권을 배운 후 여행사 대표에서 태극권 유단자로 변신했다.
예정해(76)씨는 태극권을 배운 후 여행사 대표에서 태극권 유단자로 변신했다.

지난달 22일 오전 7시 30분 앞산 고산골 체육공원(법장사 인근). 각종 운동기구와 배드민턴장이 마련되어 있어 아침부터 운동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체육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중국 음악과 구령에 맞춰 마치 춤을 추듯 사뿐히 몸을 움직이는 15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산태극기공회 회원들이다. 앞산의 정기를 받으며 이들이 즐기는 운동은 태극권이다. 고산태극기공회 회원들이 펼치는 태극권은 물 흐르듯 흘러간다. 밀고 당기고 펼치고 오므리는 동작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막히면 돌아가고 부러지기보다 휘어지는 자연을 닮았다.

중국 여행을 하다 보면 이른 아침 삼삼오오 모여 태극권을 하는 중국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지만 국내에서도 이제는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생활체육으로 태극권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태극권이란

중국 무술인 우슈의 한 종류다. 우슈는 태극권을 비롯해 장권'남권'검술'곤술'창술'도술 등을 통칭하는 용어다. 그래서 태극권 초단 심사에 합격하면 우슈 초단 자격증이 나온다. 태극권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송나라 말 도가의 본산인 무당산에서 장삼봉 진인이 창안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태극권은 기(氣)의 함양과 조절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내가권 무술이다. 그래서 파괴력을 중시하는 외가권과 달리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태극권은 태권도와 같이 여러 가지 품새로 구성되어 있다. 품새를 배우는 것이 곧 태극권을 익히는 일이다. 고산태극기공회 회원들이 펼치는 태극권은 중국 당국이 문파마다 조금씩 다른 품새를 통일화하고 간소화시켜 만든 총합 태극권이다. 중국 당국이 태극권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만든 표준 태극권이라 할 수 있다. 총합 태극권은 8식'16식'24식'32식'42식'48식'108식 등으로 나누어진다. 주로 많이 하는 것이 8식'16식'24식이다. 8식을 익히면 초단, 16식을 익히면 2단, 24식을 익히면 3단을 딸 수 있다. 태극권은 8식을 배우는 것이 가장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정확한 동작을 몸에 익히려면 일주일에 세 번(1시간씩) 배운다고 가정했을 경우 6개월 정도 소요된다는 것. 하지만 8식을 배우고 나면 16식과 24식은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다고 한다. 기초공사만 잘해 놓으면 건물은 금방 올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고산태극기공회

고산태극기공회는 내년이면 결성 20주년을 맞을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현재 활동 중인 회원은 30여 명. 연령대는 60~80대까지 다양하다. 최고령자는 올해 84세인 최수영 씨다. 고산태극기공회 회원들의 태극권 평균 수련 기간은 10년을 훌쩍 넘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태극권의 매력 때문이다. 회장을 맡고 있는 이병구(82) 씨는 1992년 태극권을 시작했다. 한국농어촌공사를 정년 퇴임한 뒤 소일 삼아 앞산에 등산을 왔다 태극권을 처음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씨는 "혼자 앞산에서 태극권을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고 건강도 증진시킬 수 있는 운동 같아 배우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굳어지는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데는 태극권만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독실한 불교 신도인 양정자(66'여) 씨는 오랫동안 선방에서 수련을 하다 태극권에 입문했다. 그녀도 10여 년 전 앞산에 등산을 왔다 고산태극기공회를 접하고 회원이 됐다. 양 씨는 "선방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수련을 하지만 태극권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련을 한다. 정적인 선원 수련에 비해 태극권은 동적이라 더욱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인환(63) 씨는 태권도장 관장이다. 그는 지난해까지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운 태권도가 좋아 아예 직업으로 삼은 김 씨가 태극권을 처음 접한 것은 20년 전이다. 김 씨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이루어진 태극권을 배우면 강한 운동인 태권도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했다. 그것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태권도와 태극권을 병행하고 있다. 태극권은 태권도 못지않게 매력적인 운동이다"고 말했다.

고령자들이 많지만 회원들의 실력은 만만찮다. 고산태극기공회는 지난해 대구시장배 태극권대회에서 18식 태극기공(태극권을 하기 전에 하는 일종의 준비 운동)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또 천성옥(62'여) 씨는 전국대회에서 8식 여자 노년부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실력파다. 이병구 회장은 "회원들이 나이가 많아 승단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모두 2, 3단 이상의 고수들이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

태극권의 최대 장점은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어 부상 위험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몸의 균형을 잡는 데도 효과적이다. 한 가지 운동을 장기간 하다 보면 특정 근육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달해 몸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태극권은 전신을 사용해 오른쪽'왼쪽을 번갈아 가며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균형 있는 신체 발달을 돕는다. 특히 호흡을 충분히 하면서 천천히 근육과 관절을 움직여 주기 때문에 관절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또 태극권은 복식호흡을 바탕으로 한 유산소 운동으로 비만 관리에도 도움이 되며 장소와 기구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고산태극기공회 회원들의 평균 나이는 75세이지만 모두 건강하다. 특히 태극권을 하고 난 뒤에는 병원 신세 지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양정자 씨는 "태극권을 배우고 난 뒤부터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태극권이 유연성을 기르는 데 좋은 운동이라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한다. 하지만 태극권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복식호흡이 기본이 되는 운동이라 젊은 사람들도 배우면 좋다"고 말했다.

한편 고산태극기공회는 궂은 날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고산골 체육공원에서 태극권을 한다. 고산골 체육공원은 고산태극기공회의 주 활동 무대다. 고산태극기공회는 태극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문의 010-7376-7576.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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