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국 한방이 '무등산폭격기' 추락
1990년 해태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에 앞서 삼성 라이온즈 정동진 감독은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단서가 달렸다. 선동열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 삼성엔 '탈(脫) 해태=타도 선동열'이란 등식이 성립돼 있었다.
'무등산 폭격기'로 불린 선동열은 투수부문의 독보적 존재였고, 그만큼 타자들로서는 맞서고 싶지 않은 투수였다. 1985년 해태에 입단한 이래 그는 프로야구 마운드를 평정했다. 1990년 평균자책점 1.13(1위)을 기록한 선동열은 입단 후 6년 통산 평균자책점이 1.14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1986년 24승, 1989년 21승에 이어 1990년에는 22승을 거두며 2년 연속이자 유일한 20승대 투수였고 1990년 시즌 8번의 완투, 이중 6번을 완봉승(승률 0.736, 탈삼진 189개로 1위)으로 장식한 선동열은 타자들에게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시즌 중 그가 허용한 홈런은 딱 1개였다.
홍승규 대구MBC해설위원은 "선동열이 불펜서 몸을 풀면, 상대팀 관중은 '이젠 끝났다'며 자리를 뜰만큼이었고 타자들 역시 홈플레이트 가까이서 더 빨라지는 직구와 오른쪽 타자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슬라이더는 알고도 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옆으로 흔들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정규시즌서 삼성전에 5번 나온 선동열은 3승2세이브를 챙겼다. 이런 선동열이 해태에 버티고 있으니 삼성으로선 그를 넘어서는 것이 곧 해태를 침몰시키는 것이었고,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도 선동열과의 승부에 따라 결정되는 명제였다.
1990년 10월 13일 광주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 삼성 선발 이태일은 1회 1사 2, 3루에 몰렸지만 실점하지 않고 불을 껐다. 4회까지 7안타를 두들겨 맞았지만 두 차례의 병살타를 유도해 위기를 모면했다. 타선은 해태 선발 이강철에 4회까지 무안타로 끌려가고 있었다.
4회까지 0대0. 중반을 향하면서 초조해진 건 해태였다. 찬스를 만들고도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하자 해태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5회초. 삼성의 선두타자 이현택이 2루타로 팀의 첫 안타를 신고하며 포문을 열자, 해태 김응용 감독이 갑자기 더그아웃을 벗어나 마운드로 걸어 나왔다. 광주구장은 그와 동시에 큰 함성이 일었다. 이미 선동열이 3회부터 불펜피칭으로 몸을 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이강철에게 공을 건네받았다. 4이닝 1안타로 호투 중인 투수를 내려버리자 삼성 타자들은 어이가 없었다. 예상대로 선동열이 마운드로 걸어 나왔다.
"해태~, 선동열~" 광주구장은 마치 잔칫집처럼 들썩거렸다. 삼성 9번 타자 김용국은 볼을 끝까지 봤다. 1루 파울타구를 포수 장채근과 1루수 김성한이 서로 양보하다 공을 놓쳐 한 숨을 쓸어내린 김용국은 선동열의 5구를 받아쳤다. 잘 맞은 공이 좌중간으로 향했다. 관중은 구위에 눌려 공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설마'하며 태연한 척 했지만 공은 그대로 펜스를 넘어갔다.
정규시즌 35경기에 등판, 딱 1개의 홈런밖에 맞지 않았던 선동열이 플레이오프 1차전서 그것도 첫 타자에게 홈런(2점)을 맞은 것이었다. 삼성은 이 순간 희망이 싹텄고 해태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6회말 한대화에게 솔로 홈런을 맞은 이태일은 김상엽에게 바통을 넘겼고 삼성은 그가 위기에 몰리자 김성길을 마운드에 올려 불을 껐다. 짜릿한 손맛을 본 김용국은 9회초 선동열로부터 다시 2타점 적시타를 터뜨리며 삼성의 4대1 완승을 이끌었다. 김용국은 공포의 대상이었던 선동열로부터 이날 4타점을 뽑았다.
이튿날, 열린 2차전(광주)은 더욱더 극적으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0대2로 끌려가던 삼성은 7회 4점을 뽑으며 4대2로 전세를 뒤집었다. 8회초 1점을 추가하며 5대2로 여유를 찾았지만 8회말 곧바로 장채근의 3점 홈런 등으로 5실점 해 스코어가 순식간에 5대7로 뒤집혀버렸다.
삼성에 남은 기회는 단 1이닝. 2개의 아웃카운트를 날린 삼성은 '적지에서 1승1패면 잘했다'며 대구에서 열리는 3차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 박승호가 중전안타를 쳤다. 9회 2사 후 안타 하나가 가져올 엄청난 일을 삼성도 해태도 짐작하지 못했다. 1차전 잘못된 투수교체 타이밍 때문에 졌다는 비난을 받은 해태 김응용 감독은 이날 경기만은 확실히 마무리 짓겠다며 투수를 교체했다. 마운드에는 1차전 1안타 후 강판당한 이강철이 이번에는 아웃카운트 1개를 남기고 선동열에게 바통을 넘겼다. 타석엔 김용철이 크게 심호흡하고 나서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고 까마득히 날아간 공은 펜스 너머에 떨어졌다. 극적인 동점 홈런. 선동열은 이틀 연속 선두타자에 홈런을 맞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용철의 기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연장 11회초 김용철은 또다시 선동열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쳐 7대7 균형을 깨는 결승 타점을 뽑았다.
적지에서 2승을 거둔 삼성은 10월 16일 1만3천 명이 꽉 들어찬 대구에서 해태를 5대2로 물리치고 오랜 악연을 떨어냈다. 이날 선동열의 모습은 마운드에서 볼 수 없었다. 삼성은 포스트시즌 5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해태는 5년 연속 우승이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정동진 감독은 "해태를 이렇게 통쾌하게 이겨보긴 처음이다. 정면승부 작전이 주효했다. 경기를 많이 할수록 불리하다고 생각해 초반부터 밀어붙였다"고 했다.
'해태를 깰 비책이 있다'는 큰 소리에 비웃음 지었던 이들이 정동진식 야구를 주목했고 언론들은 앞다퉈 1990년 가을에 빚어진 이변을 대서특필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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