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책] '7보시'로 유명한 조조의 3남 조식, 정쟁에 희생

입력 2011-09-17 07:58:00

조자건집/ 조식 지음/이치수'박세욱 옮김/소명출판 펴냄

말(馬)먼지가 세상을 뒤덮던 시절, 불우한 삶을 살았던 시인 조식의 삶과 작품을 담은 책이다. 조식(曹植)은 위나라 무제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로 192년에 태어나 232년에 죽었다. 자는 자건(子建)으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투에 나섰으나,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문인들을 성실히 대해 그들로부터 많은 호감을 샀다.

조식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지냈다. 인물이 수려하고 시적 감수성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의 기질이 화를 불렀다. 그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신을 가다듬는데 힘쓰지 않았으며, 술을 마심에 절제하지 않았다. 통행금지를 어기고 밤에 성문을 열고 나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조식의 소탈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은 대사를 맡기려는 아버지 조조의 눈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아버지 조조의 주장(主將) 조인이 촉나라 관우의 군대에 포위되어 곤경에 처했을 때, 급히 가서 구원하라는 명령에 '술에 취해 명령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완전히 아버지의 눈 밖에 났다. 이에 반해 재주는 부족했지만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 첫째 아들 조비가 제위를 계승해 문제(文帝)가 되었다.

형이 제위에 오른 뒤 조식의 생활은 곤궁과 위험의 연속이었다. 조비는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제후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동생 조식 역시 경계대상이었다. 형은 동생 조식의 절친한 친구였던 정의와 정이, 공계를 죽였고, 조식과 여러 왕들을 지방의 봉국으로 보냈다. 또 관리를 파견해 감시하고,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고 했다.

형 조비는 조식의 세력이 커지 못하게 끝없이 봉지를 옮겼고, 술에 취해 저지를 실수를 명분으로 죽이려고 했으나 어머니 변태후가 극력 변호한 덕분에 죽이지 못했다. 조식은 단계적으로 관작이 깎였으며, 1년에도 2, 3번, 3, 4년에 한번 이상 봉지를 옮겨 다니느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컸고, 경제적으로 곤궁에 처했다. 형 조비가 죽고 조카 조예(曹叡)가 명제(明帝)로 즉위한 뒤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권력의 의심과 견제를 받으며 살아야했던 조식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가 '칠보시'(七步詩)다. '일곱 걸음에 지은 시'라고 하는데, 형 조비가 "네가 정말 시를 좋아하는 놈인지, 시를 핑계로 사람을 모으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진정 시인이라면 일곱 걸음 안에 시 한 수를 지어라. 여덟 걸음 째 네 목을 칠 것이다"고 명령하자, 지었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이며, 칠보시의 작자가 조식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지은 시가 맞다는 전제 아래 싣고 있다.)

'콩을 삶으려고 콩깍지를 불태우고/ 메주를 걸러 즙을 만든다/ 콩깍지는 가마솥 아래서 타고/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우네/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지지고 볶는 것이 어찌 이리 급한가.-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漉豉以爲汁(록시이위즙)/ 萁在釜下然(기재부하연)/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권력 앞에 재가 돼 버린 형제애를 표현한 시로, 슬프고 아름답다. 조식은 만년을 쓸쓸하게 지냈다. 좌우에 사람이라고는 하인뿐이었고, 마주하는 사람은 처자뿐이었다.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여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태화 6년(조카인 명제 6년) 11월, 41세의 나이로 죽었다. 765쪽, 4만7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