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근'현대 전까지 우리 역사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은 것 같다. 신라 신문왕 때 왕경을 경주에서 대구로 옮기려 했다는 사실과 신문왕이 대구 인근 경산까지 왔었다는 기록(689년), 고려 왕건 군대와 후백제 견훤 군이 맞붙은 공산전투(927년), 임진왜란 후 경상감영을 옮겼다는 기록(1601년) 등 몇몇을 제외하면 대구는 역사 기록에서 별로 부각되지 않는 곳이었다.
대구는 작은 고을이었다. 태백산과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그리고 죽령 조령 추풍령 등의 태산준령(泰山峻嶺)에 둘러싸인, 그 고개 남쪽(嶺之南)의 분지에 자리 잡은 영남의 숱한 고을 중 하나였다. 지리적으로는 경상도 중심이었지만 역사 무대에서는 변방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근'현대 들어 대구는 내륙 교통의 중심으로 부상됐다. 일본 강점기 때는 서상돈의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한 항일 활동이 활발히 펼쳐졌고 이육사 현진건 등 많은 문인 예술가를 배출해 명성을 얻었다. 광복 이후는 반독재 운동의 효시로 불릴 2'28학생운동이 일어났고 진보적인 정치 이념으로 역사적 흐름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1960, 70년대 박정희 정권 이후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 지역적으로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조선조 때 4색 당파 속 '오령'(吾嶺'우리 영남)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나쁜 이미지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선동적인 구호에 동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 현상이 빚어졌고, 외부의 시각은 따가웠다.
그 결과 지금 대구는 마치 '이방인들'이 사는 곳처럼 취급받기에 이르렀다. 대구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굳어져 갔다. 2008년부터 잇따라 내놓은 대구경북연구원 연구 자료에 투영된 외부인들의 대구에 대한 이미지는 비관적이다. '수구 꼴통 도시, 엽기 도시, 고리타분하고 갑갑하고 떠나고 싶은 희망 없는 도시, 절망의 도시, 고담 도시(Gotham City: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부패'타락'범죄의 가상 도시),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지역….'
이제 우리 스스로 변할 때가 왔다.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도 불구, 지난 9일 동안 달구벌을 뜨겁게 달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지금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시민들의 저력과 역량, 에너지가 한껏 분출한 지금 변화의 가능성은 커졌다. 갇힌 도시에서 열린 도시로, 고립된 변방에서 새로운 도약과 변화의 중심으로 옮겨가기에는 지금이 찬스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 년 신라에서부터 수천 년 이어지며 대구 사람들의 혈맥 속에 흐르는 도전과 모험, 개방과 수용, 화합과 창조적 사고 및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닫힌 틀을 깨고 대구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수년 전부터 대구 정체성에 대한 고민스러운 작업들이 대구경북연구원이나 대구 역사학계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 오창균 연구원은 "외부인들이 대구경북 정체성에서 시대적 필수 요건인 창조성과 개방성, 역동성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흥미롭게도 지역 문을 활짝 열어 낯선 것을 만나고 이를 매개 삼아 발전을 이뤄낸 곳이 대구경북"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는 "대구인들 기질의 원형은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에 맥이 닿아 있다"면서 개방과 보수의 두 모습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체성 재정립과 함께 폐쇄성과 배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직을 비롯해 대구의 각계에 만연한 '끼리끼리 문화'를 먼저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학연과 지연, 혈연 등 각종 연고에 얽매여 끼리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사고방식은 열린 대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학력 파괴, 고졸자 배려라는 시대적 변화의 흐름과 달리, 학력이나 고등고시 출신 여부에 따른 차별과 같은 장벽을 없애는 것도 절실하다.
외형의 잔치는 끝났지만 진짜 잔치는 지금부터다. 대구를 변화의 중심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에 다 함께 관심을 쏟아야 한다. 남을 탓하기 앞서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차고 밖으로 나갈 때다.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부분에서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치권력에 기대다간 실속이 없다. 자신의 잇속만 차리고 지역발전은 외면하는, 무늬만 대구 사람인 그들이 외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선동 구호에 이제 속지도, 끌려가지도 말아야 한다.
鄭仁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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