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끝난 CNN의 시사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를 TV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날 초대된 명사는 미국 헤비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Motley Crue)의 멤버 네 명이었다. 지금 30, 40대 가운데에서는 1980년대를 주름잡던 이 록스타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머틀리 크루는 현대 문화예술계를 통틀어 최악의 사고뭉치들이었다.
신문 칼럼에는 이미지 자료가 같이 실리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 머틀리 크루의 사진을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록의 역사에서 악동들은 늘 있어왔다. 그래도 이들 네 명보다는 심각하지 않았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예계 속에서 관리되는 전략일 뿐이었다.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와 도어스(The Doors)도 사고를 치고 다녔지만, 중간계급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밴드 구성원들의 지적인 일탈로 해석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 출신의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는 펑크록을 통해 기성 사회의 허상을 정면으로 받아친 진정성이 예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머틀리 크루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그냥 말썽꾸러기들이었다.
이들이 어떤 사고를 일으켰는지 살펴보면, 지금 유명인들이 이따금 일으키는 사회적 물의를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인다. 보컬리스트 빈스 닐은 음주운전사고를 일으켜 자신의 단짝친구의 생명을 빼앗았다. 베이스를 치는 니키 식스는 마약복용과 불법 총기소지 혐의로 철창신세를 여러 번 지는 걸로 모자라 공식 석상에서 다른 스타들을 깎아내리거나, 주먹 싸움을 벌인 일도 흔했다. 드러머인 토미 리 또한 사진기자들을 폭행해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다가 결혼 후 아내인 연기자 파멜라 앤더슨과의 정사장면을 담은 비디오가 유출되는 소동도 겪었다. 기타리스트인 믹 마스는 조금 나아보였지만, 역시 술과 마약에서 벗어나 있진 못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이름이 한국에 알려진 다음에도 사람들은 음반을 레코드 가게에서 구할 수 없었다. 문화 표현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지금보다 더 심했던 1980년대 당시에 출세작 'Shout At The Devil' 앨범 가운데 심의를 통과한 곡은 'Helter Skelter' 하나뿐이었다. 이 노래는 비틀스가 발표한 곡들 중에서 가장 과격하고 요란한 작품이었다. 그런 곡이 머틀리 크루에게는 가장 순한 노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든 이들은 CNN 방송에 나와서도 여전히 태도가 불량했다. 그들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서 래리 킹의 질문에 실실 웃어가며 동문서답을 했다. 전설의 반열에 오른 진행자 래리 킹도 지지 않고 말을 속사포처럼 뱉어냈고, 머틀리 크루 멤버들은 비속어를 섞어가며 받아쳤다. 그래서 내 귀엔 그들이 주고받는 영어가 절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들의 팬(또는 안티 팬)들이 문자 메시지로 실시간 질문을 해왔다. 당연히 낯 뜨거운 동영상의 주인공 토미 리에게 질문이 쏟아졌고, 헤로인 복용과 폭력을 휘두른 니키 식스에게도 관심이 이어졌다. '어쩌면 그렇게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그 모양이냐'는 문자 메시지에 대해 보컬리스트 빈스 닐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바뀌면 이상하잖아." 듣고 보니 그 말은 맞다. 사람이 바뀌면 이상하다.
세상은 한 인물이 지켜나가는 일관성에 대해서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누군가의 극적인 변신도 칭송한다. 만약 갱 두목에서 종교 활동가로, 운동권에서 보수정치인으로, 가난한 예술가에서 부동산 거부로 바뀐 인생이 있다고 치면 그들의 삶은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과거와 현재가 딴판인 사람들은 일단 경계하고 보는 습관이 있다. 물론, 정신과 의사를 하다가 교향악단 지휘자로서의 생을 살다 간 주세페 시노폴리처럼 내가 예외적으로 흠모하는 유형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생애사의 획을 긋는 큰 변환보다 그냥 평범하고 지루한 생활 속에서 고양된 무엇을 꿈꾸는 일 또한 전혀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란츠 카프카 또한 고단한 직장인에서 특별한 문학가로 한 단계 올라서진 못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소설 '변신'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문학비평은 오늘날 정설이 되었다.
윤규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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