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41)] 영국 하위문화의 시작…로니 도니건

입력 2011-09-01 13:56:11

로큰롤이 미국에서 탄생했을 때 가장 긴장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표면적으로 (로큰롤이라는 이름에서부터) 흑인들의 저속한 음악이 영국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이유였지만 실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문화의 미국화(Americanization) 현상을 우려한 것이다. 대중문화가 미국의 192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던 1950년대 영국은 미국의 재즈와 로큰롤에 열광하는 자국 젊은이들을 마땅치 않게 여기면서도 미국화라는 피할 수 없는 물결을 우려한 것이다. 물론 나중의 이야기지만 1960년대 비틀스를 중심으로 한 영국 음악이 미국에서 인기를 누린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찬사를 보낸 것도 미국 문화의 소비국에서 생산국으로 변신한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로큰롤은 보수적인 가치관으로 가득 찬 영국에서 새로운 것을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지만 실속은 미국에게 넘겨줘 버렸고 오히려 패전국이던 독일과 일본이 경제 성장을 이룬데 비해 정체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젊은이들에게 패배 의식만 안겨 줬고 젊은이들은 미국문화를 동경하게 된다. 특히 로큰롤이 등장하면서 그 현상은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었다. 이런 현상을 영국 정부는 좌시하지 않았다. 라디오 방송은 미국의 로큰롤을 선곡하지 않았고 정부는 로큰롤을 부정한 음악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로큰롤을 대신할 어떤 것을 찾게 되는데 그때 적절한 대안이 등장한다. 바로 로니 도니건(Lonnie Donegan)이 1955년 발매한 앨범 '킹 오브 스키플'(King Of Skiffle)이다.

스키플은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기타와 밴조 등을 들고 노래할 때 눈에 띄는 아무 것, 그러니까 빨래판이나 나무상자 같은 것을 두드리며 즐기던 음악이었다. 원래 스키플도 미국에서 시작된 음악인데 신대륙으로 온 이주민들이 딱히 악기가 없자 급조해서 즐기던 음악이었다. 경쾌한 리듬을 가졌지만 음악적으로 정제되지 못했던 스키플이 영국으로 건너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로니 도니건은 기존의 스키플에 미국의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 컨트리음악을 적절히 수용한다. 그렇게 완성된 앨범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데 특히 수록곡 '록 아일랜드 라인'은 영국차트와 미국차트 1위를 기록하고 영국 최초의 골드레코드를 기록하게 된다. 단순한 가사와 경쾌한 리듬, 여기에 건전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스키플은 1950년대 영국을 상징하는 대중문화 아이콘이 된다. 또 누구나 기타 한 대만 있으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대중음악 창작의 붐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제로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까지 영국 각지에는 수많은 스키플 밴드들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훗날 가장 유명해지는 스키플 밴드는 리버풀의 '쿼리맨'이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3명의 멤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를 만들게 된다. 바로 '비틀스'의 탄생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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