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대타협

입력 2011-08-25 11:03:53

조계종 스님들이 이웃 종교에도 진리가 있으며 종교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한 동지적 관계에 있다는 종교평화선언을 내놨다. 세상을 걱정해야 할 종교가 되레 세상의 걱정거리가 됐으며 이래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성찰에서 선언을 마련했다고 한다. 종교가 평화의 도구가 돼야 한다는 취지에 다른 종교들도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불교의 현주소에 대한 스님들의 진단은 욕심을 버리라는 부처님 법대로 살기보단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로 들린다.

세상을 걱정해야 할 정치가 골칫거리로 전락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거 때면 나라와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세상은 그들을 봉사자로 여기지 않는다. 믿지 못할 부류라며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인이 욕을 먹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결국 욕심 때문이다. 정치인치고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이야 없겠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욕망은 쉽게 버리지 않는다.

신념과 의지는 정치인의 기본이다. 그러나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욕망과 의지는 간혹 세상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동서고금 역사는 좋은 생각 좋은 정책이 세상을 오히려 뒷걸음치게 한 사례를 곳곳에 남기고 있다. 내 생각이 옳고 바르다는 신념을 고집하면 잘못된 생각을 받아들일 여지가 적다. 나와 다른 생각과 타협하지 않는 아집과 욕망이 정치를 세상의 걱정거리로 만든 부분도 적잖다.

서울시 주민 투표는 함을 열지도 못한 채 끝났지만 복지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리를 내놓게 된 서울시장이나 여당은 물론 나쁜 투표라며 반대한 야당까지 투표 결과에 제각각 다른 해석을 하지만 어쨌든 이제 복지 논쟁은 국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서울 사람도 다는 아니겠지만 지방 사람들은 대부분 무상급식의 문제를 잘 모른다. 나라 형편이 공짜 점심을 줄 수 있는지도 아리송하다. 막 퍼주다간 나라 곳간이 텅 빈다는 말도 맞는 것 같고 미래를 짊어진 아이들에게 먹는 문제까지 빈부를 따져서는 안 된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복지는 하나의 통로로만 연결되지 않는다. 어린이수당 지급 등으로 집권한 일본 민주당이 결국 어린이수당 지급 정책을 철회한 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일이기도 하지만 정책을 실현할 재원 마련 대책을 세우지 못한 탓이다. 낭비적 예산을 줄이면 된다는 소박한 발상으로는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민 투표도 사실 선후가 잘못됐다. 서울시장이나 서울시교육감, 여야의 생각은 오십보백보다. 그렇다면 서로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지혜를 모아 길을 찾기도 전에 나의 옳음에만 매달려 시민들을 헛일하게 만든 것이다.

조선왕조의 지지 기반을 뒤흔든 대동법은 전국 확대 시행까지 100년이 걸렸다. 문제 제기부터 따지면 근 200년이 걸린 법이다. 공납 제도를 바꾼 대동법의 요지는 간단하다. 부자인 양반 지주들이 세금을 더 내고 가난한 농민들이 적게 내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 나라 곳간을 살찌게 하자는 것이다. 법 시행에 걸린 100년의 세월은 반대가 거셌다는 점을 알게 한다. 지지 기반이 흔들린다는 관리들의 반대에 임금도 어쩔 수 없었다. 대동법의 경세가 김육은 이렇게 상소했다. "왕의 정사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보다 우선 할 일이 없으니 백성이 편안한 연후에야 나라가 안정될 수 있다." 삶에 대한 의욕이 극도로 낮아진 가난한 백성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왕조의 운명이 이어질 수 없다는 충고였다. 조선의 복지 정책 대동법은 많이 가진 양반 지주들이 대타협을 받아들임으로써 시행된 것이다. 양반 지주들의 양보로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달랜 공생공존의 타협은 조선이 선택한 양극화 갈등의 해법이었다.

나라 살림이 커지면 국민들도 당연히 잘살아야 한다. 가난하던 시절은 하면 된다는 희망이 넘쳐났는데 나라가 부자가 되니 해도 안 된다는 절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무분별한 복지 정책의 결과를 걱정하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권리와 의무에서 모든 국민이 평등하듯 복지 또한 보편적이어야 한다. 부자라고 공짜를 마다하지 않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많이 부담하되 되돌려받는 것은 같아야 한다. 그래야 대타협이 이뤄진다.

徐泳瓘(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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