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일흔이신 친정엄마는 십 년째 수영을 하고 계시고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고 유머가 넘쳐 주로 50대인 회원 중에 왕언니라고 불리며 인기가 최고다. 안부전화라도 드리면 나 잘 있다. 신경 쓰지 마라고 하시며 전화를 뚝 끊으신다. 1년 내 김치, 된장, 고추장 밑반찬 만들어 5남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재미로 사시는 엄마, 우리엄마는 평생 안 아프고 안 늙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급성늑막염으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여 보름이 지났다. 딸 넷, 며느리까지 모두 맞벌이라 당번을 정해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환자복을 입고 있으니 영락없는 할머니 모습이다. 우리엄마가 언제 이렇게 늙었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운 없는 모습에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아프실 때 엄마 곁에서 마음 편하게 손발이 되어 드리고 싶은데 가게에 앉아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옛말에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두어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거두지 못한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모든 걸 다 내어 주어도 당연한 줄 알았다. 병원에 계시면서도 괜찮다. "바쁜데 그만 가봐라. 이제 안와도 된다" 하시는 우리 엄마 빨리 기운 차리셔서 퇴원하시게 쇠고기 듬뿍 넣고 미역국을 끓여 동생 편으로 보내드렸다.
김진란(대구 북구 태전동)
수필-2. 소중한 인연
작년 여름에, 초원이네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 먼 나라로 떠나면서 초원엄마는 나에게, 쓰던 재봉틀을 선물로 남겨두고, 아이들 학비에 보태라고 200만원이나 되는 큰돈과 편지 한 통을 내 눈에 띄기 쉽게 싱크대 서랍 속에 숨겨 놓았다.
10년 전에, 우리 옆집으로 초원이네가 이사를 왔을 때. 두 살 된 딸 초원이가 있었고, 국제결혼으로 남편은 캐나다 사람이었다. 그리고 초원엄마는 나보다 다섯 살이 적었다.
초원이네가 이사를 온 이후로 삭막하던 아파트 화단 빈터 곳곳에는 초원엄마가 꽃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 가꿔놓은 채송화와, 봉선화와, 해바라기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천부지에 몇날 며칠 동안 돌들을 골라내고 일궈 놓은 그녀의 텃밭에는 감자와 고추, 부추와 상추가 자라서 초원엄마가 나눠주는 싱싱한 채소들로 이웃들의 식탁은 풍성했다. 초원엄마와 난 하루라도 안 보면 궁금해서 못 견디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에게 불행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남편의 암 진단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절망적인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 무렵 초원이네도 충청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 후 이년 동안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남편이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는 것이 죄가 아닐 텐데 난 마치 죄인처럼, 남들한테 불행이 들켜버리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현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집안에만 꼭 틀어박혀 살았다. 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이사라도 가서 불행하지 않은 척 살고 싶었다. 괜한 자격지심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몹시 힘들기만 했다. 절망 속에서, 가난과 빈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우체통에 낯익은 그녀 글씨의 편지 한 통이 와 있었다. "그동안 혹시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될까봐 연락을 할 수 없었어요."라는 사연과 함께. 그리고 매달 적금 넣은 큰돈을 선뜻 우리통장에 넣어주고, 아이들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계속 보내라며 학원비를 보내주곤 했다. 고마워하는 나에게 오히려 "예전에 우리한테 잘해주었는데 많이 못 도와 줘서 미안해요" 하며 내가 미안해할 틈도 주지 않았다.
친동기간도 하기 어려운 도움을 초원엄마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해 줄 수 있는지? 아마 초원엄마 마음 속에는 천사가 살고 있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초원엄마 얼굴은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는 밝고 환한 모습니다. '분명 천사 맞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이별의 아픔을 겪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초원엄마와의 인연을 선물로 받았다. 초원엄마의 도움과 따뜻한 위로는 나를 우울과 절망에서 건져 올려 주었으며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 속에서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박민정(경산시 진량읍 부기리)
시-#1. 魚遊谷
幽谷淸水聲
大湖魚龍國
潛魚躍靑波
秘境長壽村
어유곡
그윽한 골짜기엔 맑은 물소리 들리고
커다란 호수는 어룡의 나라라네
잠자던 용이 뛰어 오르면 푸른 물결이 일어나는
비경의 장수촌이 바로 내 고향 어유곡이라네
정민영(대구시 북구 태전동)
시-#2. 취하고 싶은 날 있더이다
취하고 싶은날이 가끔씩 있더이다
하지만 당신과나 잔속에 일렁이니
고요한 가슴으로 달려가 다독이고
싶지만 야속함만 저멀리 메아리라
은은한 찻잔가득 그리움 채워담고
날마다 속절없이 그림자 드리우네
있을적 무리함과 자잘못 빛바래고
더이상 너와나의 잔속에 못비취네
이미다 추억으로 홀연히 잔비우고
다음에 또 취하게 빌미나 주지마오
이문학(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시-#3. 바지랑대
흔들어대는 바람에 허수아비처럼 춤을 추는 바지랑대 꼭대기에 고추잠자리 앉았는데 바람 춤을 즐기다가 포르르 날아올라 광목 홑청 이불자락에 붙었다.
어디에도 바람 잔 곳 없다보니 차라리 바람 속을 날다. 세상은 온통 바람이다.
그러한 바람과 맞서 싸우지 않는 바지랑대, 이리저리 흔들릴지언정 넘어지지 않는다.
승리의 브이(V)자로 괴어줄 뿐, 나무로 서 있으려 한 게 아니다.
바람이 넘어뜨려도 딱히 서운해 하지 않을 폼이다.
바람이 아니어도 세상일은 춤을 추니까….
김윤영(대구 달서구 월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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