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통]바다, 사랑에 빠지고…슬픔에 빠지고…

입력 2011-08-18 15:06:07

해변의 로맨스를 가장 짜릿하게 그려준 영화가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년'사진)일 것이다.

병영의 부조리를 다룬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프르위트(몽고메리 크리프트)가 어이 없이 죽은 친구를 위해 울면서 트럼펫을 부는 장면이다. 프르위트는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는 휴머니스트다. 그러나 그 반대에 위치한 인물이 워든 상사(버트 랭카스터)다. 그는 직무에만 충실한 전형적인 군인이다. 그런 그가 상관의 부인인 홈즈(데보라 커)와 해변에서 나누는 정사 장면은 연애물의 효시가 될 정도로 에로틱하면서 노골적이었다. 부둥켜안고 진한 키스를 나누는 둘에 파도가 덮친다. 홈즈가 뛰어가 해변에 드러누우면 워든이 뛰어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뒤로한 채 둘은 또다시 불륜에 몸을 떤다.

아직도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의 99%는 이 장면을 떠올리는데, 흑백영화지만 데보라 커의 노출과 함께 뜨거운 욕정을 파도와 함께 잘 그려낸 명장면이기 때문이다.

여름 하면 모두 이런 해변을 꿈꾼다. 로맨스가 파도처럼 철썩이는 그런 달콤한 해변을 말이다. 그러나 모든 해변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슬픈 해변도 있다. 로맨스가 아니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그런 바다다.

최근에 본 것이 '네버 렛 미 고'(2010년'감독 마크 로마넥)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인간을 위해 생산된 복제인간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여느 SF영화와 달리 이 영화의 정서는 가슴을 저미는 듯한 슬픔이다.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가슴 아프고, 영혼도 있는데 젊은 나이에 폐기처분되는 복제인간의 운명이 눈물 나도록 슬픈 영화다.

어릴 적 삼각관계였던 셋이 바다를 찾는다. 곧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 셋의 마지막 바다소풍이다. 셋 앞에 확 트인 바다가 열린다. 누구에게는 시작일 수 있는 바다다. 그러나 이들에겐 끝이고, 종말이다.

그런데 해변 모래톱에 좌초된 배가 한 척 있다. 배지만 바다에 나가지 못한 채 비스듬히 모래에 얹혀 있다. 파도를 넘어 대양을 헤엄쳐 가고 싶지만, 망가진 몸에 수명 다한 셋의 삶이 바로 이 배와 같을 것이다. 처연한 눈빛으로 바다를 쳐다보는 셋의 눈빛이 가슴 먹먹했던 영화다.

여름의 끝, 해변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슬픈 바다가 아니라 사랑이 피어나는 바다이기를 빌어본다.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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