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히말라야에 부는 바람 -여섯 번째 이야기-

입력 2011-08-17 16:43:07

오전 여섯 시 어제 무리를 한 탓인지 아침이 무겁다. 더구나 오늘은 하루종일 오르막길을 오르는 여정이다.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는 까닭에 삶은 계란 세 개를 배낭에 넣었다. 포터가 먼저 길을 떠나고 가이드가 앞장을 서면서 축상을 출발한다. 마을을 벗어나 강바닥으로 내려서자 넓은 자갈밭 위로 물길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얼마 후면 우기가 오고 날이 더워지면 설산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강은 순식간에 불어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가깝고 평탄한 강바닥을 버리고 계곡의 멀고 가파른 길을 돌아 좁은 협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길을 오가게 된다. 삼십여 분쯤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축상 마을이 마치 시간이 정지된 그림처럼 보인다. 5년 전 안나푸르나 일주를 하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히말라야의 마을들은 늘 시간을 잊은 듯하다. 사람들은 그저 바람에 풍화되어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고 그들이 사는 집들도 경계를 두지 않고 지어져 있다. 서로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선을 긋기 시작한 이래 사람들은 그 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하지만 어쩌면 이곳도 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거의 45도에 이르는 오르막을 앞두고 포터는 숨을 고르며 짐을 내려놓았다. 그는 이틀 내내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름을 묻는 말에 짧게 겨우 대답했을 뿐이다. 이제 스물여섯의 나이인데도 자식을 둘이나 둔 가장이라고 가이드는 포터를 가리키며 웃는다. 그 웃음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 돌아온 우월함(?) 같은 것이 배어 있다. 그는 포터와 자신이 다르다고 말한다. 포터는 육체적 노동자이지만 자신은 엄연히 여행자를 안내하는 가이드라고 말할 때, 한국에서 그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신분의 차이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것이 물질의 많고 적음이라는 잣대로 재기 시작하면서 그는 이미 무스탕을 떠난 존재가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여기도 길을 닦아야 한다고 잘라 말하며 휴대폰으로 카트만두에 있는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노모가 계시는 무스탕이 아닌 카트만두로 거는 전화는 안타깝게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다섯 시간 넘게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이미 숨은 턱까지 차올라 쉬는 곳이 나오면 거의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눕고 만다. 천 길 낭떠러지를 끼고 나 있는 길 위에 사람들은 집을 짓고 사원을 짓고 한 뼘 보리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신이 주신 생명이란 이토록 끈질긴 것일까?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다 담지 못한 눈이 아프다.

전태흥 (미래티엔씨 대표사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