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 열풍' 이름 바꿨다… 얏! 인생도 바뀌어라

입력 2011-08-13 08:00:00

개명을 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2000년 3만3천210건이었던 개명 신청 건수는 2009년 17만4천902건으로 10년 만에 5배 넘게 증가했다. 개명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소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개명을 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2000년 3만3천210건이었던 개명 신청 건수는 2009년 17만4천902건으로 10년 만에 5배 넘게 증가했다. 개명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소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이영윤(34'여) 씨는 2년 전 "지우라는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점을 보러 갔는데 이름과 사주가 맞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을 볼 때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찜찜해지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직장을 옮겨야 했고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등 일도 잘 풀리지 않을 때여서 고민 끝에 개명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개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30년 동안 간직해 온 이름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 특히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 지우라는 이름도 좋은데 굳이 영윤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름을 바꾼 뒤에도 한동안은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는 일일이 개명 사실을 설명해 주어야 했다. "처음에는 영윤이라는 이름이 제 이름 같지 않았어요. 지우라는 이름에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누가 영윤아라고 부르면 저를 부르는 것 같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지우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개명 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 씨는 지금 이름에 만족하고 있다. 이름을 바꾼 덕분(?)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평생 배필을 만나 올 9월 결혼을 할 예정이다.

개명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0년 3만3천210건이었던 개명 신청이 ▷2002년 4만6천743건 ▷2003년 5만1천719건 ▷2004년 5만3천474건 ▷2005년 7만6천976건 ▷2006년 10만9천567건 ▷2007년 12만4천364건 ▷2008년 14만6천773건 ▷2009년 17만4천902건으로 10년 만에 5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2006년 10만 건을 돌파한 뒤 매년 2만~3만 건씩 늘고 있다. 대구경북도 마찬가지다. 대구경북의 개명 신청 건수는 2002년 4천551건에서 ▷2003년 5천52건 ▷2004년 5천200건 ▷2005년 7천9건 ▷2006년 1만142건 ▷2007년 1만1천43건 ▷2008년 1만2천39건 ▷2009년 1만5천53건 ▷2010년 1만5천225건으로 증가했다.

개명 신청 사유는 주로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성별 구분이 어려운 경우, 성명학적으로 좋지 않은 경우 등이었으며 최근에는 한글 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바꾸거나 흉악범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개명을 신청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개명 신청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법률전문가들과 작명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예전에 비해 개명이 쉬워졌다는 점을 꼽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한번 신고된 이름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서류를 갖춰 개명 신청을 해도 법원에서 퇴짜 맞기 일쑤였다.

그러다 2005년 말 대법원이 '원칙적 허가' 방침을 밝히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개명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대법원은 "개명 신청자에게 범죄를 숨기거나 법적 제재를 피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개인 의사를 존중하고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개명을 허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달라진 개명 분위기는 개명 허가율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개명 허가율은 ▷2002년 80.9% ▷2003년 84.4% ▷2004년 83.1% ▷2005년 82.5%로 대법원 판결 전에는 80% 안팎에 머물렀지만, 대법원 판결 후에는 ▷2006년 90% ▷2007년 92% ▷2008년 91.3% ▷2009'2010년 94% 등으로 90%를 웃돌았다.

개명이 늘어나면서 작명소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신생아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소를 찾는 사람은 줄어든 반면 개명을 위해 작명소를 찾는 사람은 크게 늘어났다.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이재박 작명연구소의 경우 개명 고객이 전체 고객의 30~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 90%에 육박하던 신생아 작명 고객은 60% 정도로 감소했다.

이재박 원장은 "군사정권 때는 개명이 상당히 까다로웠지만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많이 완화됐다. 그러다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개명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요즘에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도 개명이 가능하다"며 "개명이 쉬워지면서 황혼의 나이에 개명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름이 촌스러워도 오랫동안 참고 사용해 왔던 어르신들이 이름을 바꾸기 위해 작명소를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개명 문화는 작명원 수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신생아 작명이 작명원의 주 수입원이었지만 지금은 수입원이 다변화되었다. 이 원장은 "신생아 작명이 감소하고 개명을 위한 작명이 늘어나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개명은 주소지 관할 법원에 본인 및 부모 등의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 등을 첨부해 신청하면 된다. 성인뿐 아니라 미성년자도 신청이 가능하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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