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채용의 명암…돈 벌고 경력 착착, 편견·임금 격차 여전

입력 2011-08-06 07:04:17

올해 대구은행에 고졸 행원으로 입사가 확정된 예비행원들이 대구은행 팔공산 연수원에서 실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올 11월 정식 행원으로 입사할 예정이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올해 대구은행에 고졸 행원으로 입사가 확정된 예비행원들이 대구은행 팔공산 연수원에서 실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올 11월 정식 행원으로 입사할 예정이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최근 '고졸 채용'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학벌이 사회적 성공과 출세를 보장해주는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던 한국사회에 난데없는 '고졸 채용'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계에서 시작된 고졸 채용 바람은 산업계 전반과 공공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바람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중소기업 인력난 해결과 청년실업 해소라는 관점에서 고졸 채용의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여론도 있지만, 대졸자 역차별과 반값 등록금 문제를 잠재우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일 뿐 우리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학력 차별이라는 병폐를 바로잡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졸 만세!

경북여상 3학년 김지원(19) 양은 현재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 대구은행 팔공산연수원에서 3주째 교육을 받고 있다. 예비행원으로 입행이 확정되면서 방학을 이용해 한 달 간 수습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지원 양은 "어릴 때 자주 놀러가던 은행 창구 언니가 너무 예쁘고 친절해서 나도 꼭 그렇게 되고 싶었다"며 "은행원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전문계고(실업계고)를 지원했고, 그 꿈을 이뤄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제일여상 3학년 권지영(19) 양 역시 예비 입행예정자다. 지영 양은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요즘같이 취업하기 어려운 시절에 고졸 행원으로 은행에 입사하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며 "대학진학은 은행을 다니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대구은행은 앞으로 매년 고졸 행원 20여 명을 채용한다. 2년 계약직으로, 이후에는 무기계약직으로 바뀌며, 시험을 통과하거나 근무 실적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입사 8년차인 이야령(27) 씨는 고졸 행원으로 입사해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선택한 것이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며 "대졸 친구들은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나는 그동안 일을 해서 돈도 벌고 경력도 쌓았으며 야간대학을 통해 대학졸업장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대졸자의 경우 대학 4년 만큼의 호봉을 우대해주지만 고졸 행원은 그동안의 경력이 쌓이기 때문에 같은 나이라면 받는 임금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구백화점에서 18년째 캐셔로 일하고 있는 김은이(39'여) 씨도 고졸이라는 자신의 학력에 전혀 불만이 없다. 김 씨는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들 중에는 대졸자들도 꽤 되지만 그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며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여러 번 공부할 기회도 있었지만 굳이 대학졸업장이 필요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생들도 진학보다는 취업, 분위기 반전

갑자기 고졸 채용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정부에서 고졸자 취업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쏟으면서부터다. 지난달 20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은행 고졸 행원들을 찾아가 격려하기까지 했다. 국민은행, 산업은행 등에서도 고졸 출신자 선발이 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는 다른 은행을 비롯해 증권, 보험사 등 제2금융권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제조업체들도 기능직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에서는 올해 1만1천 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LG는 8천 명, 포스코는 450명, 현대차는 100명 등을 선발할 계획이다.

지난달 26일에는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공기업에서도 고졸자 취업이 대대적으로 됐으면 좋겠다"고 말함으로써 고졸 채용 바람이 공공분야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당장 대구시는 내년부터 학력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기술직렬(9급) 채용인원의 20%, 기능직 50%까지 고졸 출신을 특별채용한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도 최근 한국전력, 한국수자원공사 등 공기업, 준공공기관, 기타 공공기관 등 30개 기관과 간담회를 갖고 고졸 채용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재정부는 이에 따라 각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직무분석을 통해 고졸 출신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를 조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이달 중 고졸 출신을 채용에서 우대하는 방향으로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을 개정할 방침이다.

전문계고에서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환호하고 있다. 경북여상 김정애 교사는 "지난해만해도 대학진학을 하려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올해는 취업 현장이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만해도 진학하는 학생이 60%로 취업자보다 많았지만, 올해는 반반으로 비슷해진 것. 김 교사는 "전문대, 심지어는 4년제 대학을 나와봤자 오히려 취업하기만 더 힘들어진다는 분위기가 선배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차라리 취업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각 대학들의 재직자 전형이 확대되면서 일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학생들에게 선취업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고 했다.

제일여상은 교사들이 직접 발로 뛰며 전국의 기업체들과 산학 협력 체계를 구축, 현재 114개 기업과 협약을 맺어 매년 취업을 하는 학생 비중이 60%를 넘어서고 있다. 제일여상 석종륜 교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고졸자 일자리 정책에 힘입어 앞으로는 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밝혔다.

◆아직도 여전한 학력 차별

하지만 고졸의 '설움'에 못내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직장인도 부지기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역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최모(33) 씨는 "지금까지는 고졸이라는 것에 별로 스트레스를 느껴본 적이 없는데 결혼을 앞두게 되자 후회막급"이라고 하소연했다. 일단 여성들을 만나게 되면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당연스레 받게 된다는 것. 최 씨는 "주뼛거리며 '고졸'이라고 털어놓으면 그 순간부터 표정이 냉랭해진다"며 "이름 낯선 중소기업이라는 점도 노골적으로 싫어해서 이직을 해볼까 몇 번 시도도 해봤지만 고졸 학력에 옮길 수 있는 직장이 없더라"고 푸념했다.

김정애 교사도 "좋은 직장에 취업을 했단 사실에 뿌듯해 하던 아이들이 가끔 찾아와 하소연할 때가 있다"고 했다. 자기 동기들이 대졸로 입사하게 되면 직위상 고졸 사원보다 높은 위치에 있게 되는데다 연봉도 어느 수준이 되면 한계에 다다라 올라가질 않다보니 뒤늦은 후회를 하는 제자들이 있어 가슴아프다는 것. 김 교사는 "이런 분위기를 해소하려면 정부의 고졸 취업 확대 정책도 좋지만 이와 함께 능력이 아닌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적 편견도 함께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고졸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은 본인의 학력이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졸 직장인 388명 중 75.3%가 '고졸 학력이 직장생활 및 사회생활에 있어 걸림돌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직종선택이나 이직에 제약이 많아서'라는 응답이 51.0%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학력에 따른 직장 내 차별이 심해서'(27.7%), '학력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평가절하 당해서'(15.4%), '이성을 사귀거나 혹은 인맥을 구축할 때 어려움이 생겨서'(5.1%) 등 이었다.

현재 대학진학을 희망하거나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54.1%는 '그렇다'고 답했으며, 대학진학을 희망하거나 결심하게 된 이유는 38.6%가 '학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들었다.

학력별 임금 격차도 크게 벌어진다. 지난해 고졸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전문대졸자의 임금은 106.3, 대졸자는 154.4로 크게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