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熱치열-이冷치열 효과?…폭염 떨친 비결은 '일에 대한 열정'

입력 2011-08-06 07:23:46

포스코 고로 vs 수협 제빙공장 기자 체험

권성훈 기자가 고로 옆에서 삽으로 지면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뒤로 작업자 장영춘 씨가 보이며, 고로 안에는 1,500℃가 넘는 온도에서 쇳물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권성훈 기자가 고로 옆에서 삽으로 지면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뒤로 작업자 장영춘 씨가 보이며, 고로 안에는 1,500℃가 넘는 온도에서 쇳물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제2제선공장 제3고로 현장 근로자들. 맨 왼쪽과 오른쪽은 포스코 외주사 직원인 원형철
제2제선공장 제3고로 현장 근로자들. 맨 왼쪽과 오른쪽은 포스코 외주사 직원인 원형철'박상호 씨며, 가운데 2명은 왼쪽부터 장영춘'이종선 씨.
죽변수협제빙냉장공장 제빙실에서 얼음을 옮기고 있는 박승혁 기자
죽변수협제빙냉장공장 제빙실에서 얼음을 옮기고 있는 박승혁 기자
135㎏에 달하는 직사각형의 대형 얼음덩어리가 얼음박스와 분리를 앞두고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135㎏에 달하는 직사각형의 대형 얼음덩어리가 얼음박스와 분리를 앞두고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熱… 가만히 서 있어도 속옥 흠뻑, 밖 더울수록 고로도 더 후끈

'열(熱) VS 냉(冷)'.

여름엔 냉이 좋고, 겨울엔 열이 좋다. 계절에 따라 인간의 몸이 그렇게 원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부럽다. 반대로 올여름처럼 푹푹 찌고, 습도도 높을 때면 시원한 곳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비유는 어떨까? 우산과 부채를 파는 두 아들을 둔 노인이 비가 오면 부채가 안 팔릴까봐, 해가 쨍하면 우산이 안 팔릴까봐 항상 걱정했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볕이 들 수 있고, 응달이 생길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이 말은 여름에 시원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일 수 있다. 중복을 지나 말복을 향해 가고 있는 이 한여름의 중턱에서 열터(일하는 곳)와 냉터를 찾아봤다.

◆포스코 제3고로, '찐다 쪄!'

'이왕 할 거 아예 용광로로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포스코 제2제선공장 제3고로에서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취재하러 가기 전날 포스코 스테인리스 2공장 내 작업장에서 외주업체 직원들 중 1명이 죽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어 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스코에서는 사고와는 별개로 취재에 적극 협조해줬다.

기자가 접근하기에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쇳물을 뽑아내는 고로 1개가 부대시설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장이었다. 포스코에는 이런 고로가 모두 7개(일반고로 4개'파이넥스 2개'주물성 고로 1개)나 된다고 한다. 제2제선공장 부공장장이 안내를 했다. 하지만 고로 바로 옆에서 작업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하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사고 우려 때문이었다. 1,500∼1,700℃의 고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똥과 시뻘건 강물처럼 흐르는 쇳물은 보기만 해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2제선공장 현장 부총괄 직책을 맡고 있는 이종선(55) 씨가 "불똥이 튀는 고로 옆에는 가기 힘들고요. 안전바가 있는 앞까지는 가서 작업하는 것을 옆에서 도와줘도 됩니다. 고로 바로 옆에는 온도가 100℃도 가까울 정도로 뜨겁고, 불똥이 튀기 때문에 현장 작업자 외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현장 작업자 역시 이곳에선 길어야 3, 4분 작업을 하고 나옵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어쩔 수 없었다. 한번 고로 옆에서 작업하는 것을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안전수칙을 위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은색 방열복과 흰색 안전모를 쓰고, 고로 약 5m 인근에서 삽으로 지면을 고르는 작업을 했다. 그 옆으로는 출선로를 따라 용암에서 나오는 마그마 같은 쇳물이 흐르고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50∼60도는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방열복을 입고 있으니 가만히 서 있어도 속옷이 흠뻑 젖었다. 이 일 외에 특별히 도와줄 것이 없어 체험하러 온 기자로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직접 체험에 한계가 있다면 간접 체험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 34년째 근무하고 있는 장영춘(57'퇴직 후 재채용 근로자) 씨를 만났다. 평생을 이 고로와 함께 보냈으니, 가족과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평생 경제적 여유를 준 이 고로는 은인이었다.

'여름에 특히 더 힘드냐'고 묻자, 장 씨는 "외부온도가 35도 넘어가면 고로는 더 열을 많이 받아,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들며, 잠시 몇 분만 일해도 지친다. 물을 하루 평균 3, 4ℓ를 먹는데도 탈수증상을 느낄 정도"라며 "요즘은 그나마 컴퓨터 시스템으로 모든 걸 확인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정말 위험하고 힘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환경 탓인지 이 고로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안에서 일하면서도 대충 직감으로 외부온도를 정확히 예측한다. 고로 주변에서 이 정도 더우면 밖에 온도는 이 정도라는 것을 역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을 꼬박 일하는 이들은 점심식사도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때웠다. 밖에서 시켜먹는 것도 힘들고, 어디 나가서 먹고 오는 것은 쉽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틀은 주간 근무, 이틀은 야간 근무, 사나흘은 휴식을 취한다. 4조 2교대 방식이다. 이들에게 여름은 한마디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冷… 얼음 잡은 손 얼고 팔엔 닭살, 밖에 나가니 "이렇게 더웠나?"

■'춥다 추워!' 얼음공장 체험

4일 오전 8시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죽변수협 제빙냉동공장. 아침이지만 후텁지근한 기운이 온몸을 감았다. 냉동공장 앞에서 임인규(44) 공장장이 환하게 웃으며 맞았다.

"체험하러 오셨다고요. 힘 좀 써야 할건데"라며 목장갑을 건넸다. 이내 기죽기 싫어 "체력 빼면 시쳅니다"라고 큰소리는 쳤지만 제빙실을 들어서자마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135㎏에 달하는 직사각형의 대형 얼음덩어리(각얼음)가 8개 들어가는 대형냉동고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는데, 오늘 해야 할 일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일이 자동화돼 있었지만, 사람 손 가는 일도 제법 많았다. 이틀가량 얼린 얼음박스는 크레인에 올려진 뒤 얼음과 분리를 위해 물에 한번 담근다.

얼음박스를 기울이니'쿵'소리와 함께 육중한 얼음덩어리가 오른쪽, 왼쪽 8개씩 16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갈고리를 이용해 얼음을 지게차까지 밀어냈다. 바닥이 미끄러워 헛발질을 몇 번이나 하며 겨우 얼음 놓을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에 남정우(45) 대리가 시범을 보였다. 갈고리를 각얼음에 박은 채 능숙한 손놀림으로 한번에 '휙'밀어냈다. 거짓말처럼 얼음이 지게차 앞에서 멈춰섰다. 요령을 전수받은(?) 후 본격적으로 얼음을 날랐다. 목장갑은 금세 젖었고, 손바닥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어붙었다. 인간은 간사하다고 했던가. 처음 제빙실에 들어섰을 때의 행복감은 점점 고통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손바닥은 얼어 가고 숨은 턱까지 차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더워도 더운 것이 아니고, 추워도 추운 것이 아니다. 시멘트벽에 걸린 달력만이 계절의 시간을 알려줄 뿐, 이곳에서는 도저히 계절의 감각을 찾을 수 없다.

3시간 넘는 작업이 끝나자 곧바로 저장고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의 온도는 영하 6도. 제빙실에서 흘렸던 땀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지게차 뒤편에서 얼음 위치 잡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건만, 몸은 이미 얼음덩어리가 됐다. 카메라 렌즈도 급격한 온도변화에 놀랐는지 희뿌연 습기를 가득 머금은 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공장장의 라이터를 빌려 렌즈의 습기를 거둬낸 뒤에야 사진촬영이 가능했다.

임 공장장은 "여기에 보관된 1만3천 개의 얼음은 어민들이 잡아온 수산물의 선도를 유지하는 데 쓰인다"며"오늘은 배가 들어오지 않아 저장고에 얼음을 쌓아두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작업마무리 소리에 잠시 미소 짓는 것을 포착했는지, 출고과정까지 체험해보자며 출고장으로 손을 이끌었다. 얼음이 배로 실려나가는 것을 시현해 주는 공장장 덕분에 노동의 시간을 조금 더 가진 뒤에야 일이 마무리됐다.

이곳은 임 공장장과 남 대리, 손철수(54) 대리 등 3명이 일한다. 일손이 모자랄 때는 은행창구에 앉은 수협직원들까지 모두 동원된다.

"죽변 수협직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어민과 가장 가까이 일 할 수 있는 곳이기에 보람도 있고, 배울 것도 많습니다."

남 대리는'어민들을 위해 일한다'는데 보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곳은 경제논리로 말하자면 벌써 문 닫아야 하는 곳이다. 생산단가가 각얼음 1개당 8천원인데, 조합원들에게 6천원에 판매하기 때문이다. 개당 2천원의 적자가 나지만, 어민들의 원활한 조업을 돕기 위해 기분좋게 감수한다.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는 '수협직원'이기 때문에 제법 쏠쏠하다.

하지만 작업량에 비해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 노동량이 많다. 적자로 운영되기 때문에 채용도 쉽지 않다. 하루 364개의 각얼음을 생산해내며, 1만3천 개의 얼음을 보관하고 있다. 이달 20일 성어기가 다가오면 새벽 5시 출근, 퇴근은 기약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가장 바쁜 추석 1주일 전까지 이 생활을 이어가야 하지만, 풍어를 기원하며 힘차게 일한다.

"여름에 이곳에 일하면 좋을 것만 같죠? 추운데 일하다가 더운데 가면 더 더워요. 해봤으니 잘 알 겁니다"라며 임 공장장은 빙긋이 웃었다.

정말이지, 저장고를 가로막은 50㎝의 문을 넘자 팔에 돋은 닭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후끈한 열기가 폐부를 파고들었다. 얼음 나른다고 용을 썼는지 양쪽 발목이 시큰했다.

울진'박승혁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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