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 영종도서 아파트로 승부…김시춘 이토건설 대표이사

입력 2011-08-05 07:31:38

사명 건 '이토타워'도 성공

"명절이었죠. 옆집에선 차례 준비로 전도 굽고 고기국도 끓이는 데, 우리 집엔 쌀독에 쌀이 떨어졌어요. 그래도 시골인심이 남아 있었던터라 옆집에서 차례 음식을 나눠 먹자며 연락이 왔습니다. 식구들이 한꺼번에 몰려가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워, 어머니가 먼저 옆집에 가 있으면 내가 어머니를 찾는 척하며 이웃집에 들렀다가 거기서 같이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명절을 넘긴 기억이 있습니다. 모두들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제게는 더욱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한 해 3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이토건설 김시춘(55) 대표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남편 없이 힘들게 자식을 키워 온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나이 자존심까지 접어야 했던 시절에 대한 회한도 있었으리라.

서글서글한 외모에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지만 김 대표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감정을 갖춘 사나이였다. 자수성가에 성공한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 인천에서만 모두 5천여 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건설업계는 종사자들이 거칠고 막무가내가 통하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주거공간에 대한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곧바로 실패하는 곳이 바로 주택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주택건설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남들이 따르지 못하는 전문성 덕분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뒤 대기업인 1군 건설업체에서 10년, 중견건설업체에서 임원으로 8년을 근무하고 지난 1999년 직접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1992년 당시 건설업계에서 '고등고시'로 통하던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시험에 합격, 자격증도 따뒀다.

그는 탄탄한 전문성과 치밀한 준비를 바탕으로 첫 프로젝트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김 대표는 2001년까지만 해도 배로 드나들던 영종도에 아파트를 짓고 분양에 나서는 승부수를 던졌다. 무모해 보였지만 대성공이었다. 인천공항 배후 신도시 조성 계획이 전해지면서 아파트 452가구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인천에서 10년 만에 1순위 분양 마감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 대표는 "철저한 사전 분석작업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 주효했다"며 "모르는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지만 알고 보면 제 건설 인생 19년의 노하우와 분석력이 총동원된 프로젝트였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첫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탄탄한 사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지금은 인천시의 문화중심지로 자리매김한 '이토타워'를 지었다. 자신의 회사이름 딴 건축물이었던 만큼 시공 과정은 물론 입점기업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설계단계에서부터 '교보문고' 유치를 위해 공을 들였고 파격적인 임대가를 제시, 유치에 성공했다. 더불어 쾌적한 실내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조리시설이 필요한 업종과 유흥주점은 아무리 많은 임대료를 제시해도 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김 대표는 본인이 탐낸 브랜드의 입점을 위해 1년 6개월 동안 해당 공간을 비워두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제가 건축을 배우고 가정을 이룬 제2의 고향, 인천에 쾌적한 문화공간 하나 만들고 싶었던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돼 기쁩니다. 기업 운영에 도움을 준 지역사회에 대한 환원 차원이기도 하고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서 '작품' 하나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낳은 건물이 바로 이토타워입니다."

인천에서 '밥 퍼주는 사장님'으로 통하는 김 대표는 지난해 말 그동안 회사 수익의 5%를 복지사업에 기부한 공을 인정 받아 인천시장으로부터 '사회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상주시 남성동 출신이다. 고향 얘기를 꺼내자 고향마을 인근의 명주실 생산공장에서 번데기를 얻어먹고 인근 산천을 뛰어다니며 오디를 따먹던 어린 시절 얘기를 쏟아냈다. 지금은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고향을 1년에 두 차례 정도 찾는다.

김 대표는 "항상 그 때 그 모습으로 맞아주는 고향이 고맙기도 하고 때론 발전이 정체된 모습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고향 사랑은 각별하다. 지난 2년 동안 재인천 상주향우회장직을 맡아 출향인들의 결속을 다지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김 대표는 상주 중앙초교, 상주중학교, 서울 경성고, 인하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 입학 당시 공과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색약인 본인에게 입학 기회를 준 인하대에 진학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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