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성장이 무서운 '말판 증후군' 환자 민지

입력 2011-08-03 09:52:40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픈 '키다리 소녀'의 꿈

'말판 증후군'을 앓는 유민지(가명'10'지체장애 4급) 양의 엄마 김홍주(가명'41) 씨에게 딸은 '아픈 손가락'이다. 수시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여러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이 민지의 어쩔 수 없는 삶이지만 엄마는 항상 딸을 격려한다. "민지야, 그래도 너는 내 보물이야."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유민지(가명'10'지체장애 4급) 양은 키가 크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키가 152㎝여서 반에서 맨 뒷자리에 앉기 일쑤다. 키는 무럭무럭 자라도 체중은 제자리걸음이다. 30㎏이 나갈까 말까 하는 마른 몸무게 탓에 온몸이 앙상한 나뭇가지 같다. "친구들이 저보고 손가락 길다고 부러워해요." 민지 손가락이 이렇게 긴 것은 희귀난치성 질환인 '말판 증후군' 때문이다. 자신의 병을 잊은 채 늘씬한 손가락을 자랑하는 민지는 친구들의 칭찬 앞에서 웃음 짓는 영락없는 아이다.

◆"나도 뛰고 싶어요"

2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민지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이 안쪽으로 향해 뒤뚱뒤뚱 걸었다. "우리 민지는 뛸 수가 없어요. 체육 시간에도 나무 그늘에 앉아서 친구들이 뛰는 모습을 쳐다봐요." 엄마 김홍주(가명'41) 씨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딸을 쳐다봤다. 민지는 태어날 때부터 위태로웠다. 세상 빛을 본 지 이틀째 되던 날 안쪽으로 휜 발(내반족) 때문에 교정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후 3개월과 6개월 뒤 발목 수술을 2차례 더 받았다. 수술 탓인지 민지의 성장 속도는 남들보다 더뎠다. 돌이 다 지나도 아이는 스스로 몸을 뒤집지 못했다. 생후 14개월이 되던 달, 남편 옆에 누워 있던 민지가 혼자 힘으로 몸을 뒤집었다. 기적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매일 민지의 성장 과정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엄마는 또 민지가 태어나 처음으로 잘라낸 머리카락, 손톱과 발톱, 돌잡이 때 손에 쥔 연필까지 육아앨범에 테이프로 붙여서 간직하고 있다. "민지야, 너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야." 민지의 탄생이 자신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을 엄마는 말하고 싶어했다.

이런 민지 가족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아이가 6살 때 갑자기 심장 통증을 호소해 대학 병원으로 갔다가 "오목 가슴 때문에 뼈가 심장을 누르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가까스로 수술을 받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시(斜視) 증세로 친구들의 놀림을 받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민지를 데리고 다시 병원에 찾아갔다. "눈이 문제가 아니에요. 심장에 있는 혈관이 막혀 피 공급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당장 심장 수술부터 해야 합니다." 한국심장재단의 도움으로 수술비를 마련한 민지는 이때 '말판 증후군'이라는 진단도 함께 받았다. 말판 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으로 골격계와 안구, 순환계에 장애가 나타나며 손가락과 발가락이 길게 뻗어 자라고 키가 큰 것이 특징이다. 신체 성장 속도만큼 내장 기관이 빨리 자라지 못해 혈관이 늘어나고 약해져 합병증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2008년 5월 3일 심장 수술을 마친 뒤 민지는 그해 어린이날을 병실에서 보냈다.

◆아빠의 죽음

민지 가족은 엄마와 민지, 오롯이 두 식구다. 민지가 4살 때 남편(당시 34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이는 얼마 전 학교에서 가족 소개를 했다. "우리 집 식구는 엄마와 저 단 두 명이에요."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자 짓궂은 친구 한 명이 "아빠는 어디 갔어?"라고 민지에게 되물었다. 민지는 친구의 질문에 상처받기보다 씩씩하게 대응했다. "그건 내 사생활이니까 대답 안 할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여태 아빠 보고 싶다는 투정 한 번 안 했던 애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라며 가슴을 쳤다.

남편은 백혈병 환자였다. 당시 굴삭기 등 중장비 수리 사업을 했던 남편은 2004년 사업이 넘어질 위기에 처하자 아픈 몸으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돈을 빌려서라도 사업을 일으키려 했던 남편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뇌출혈로 쓰러졌고 중환자실에서 14일을 버티다가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 당시 4살이었던 민지는 중환자실 입구 복도에서 아빠가 일어나기만을 기도했지만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지 엄마는 남편의 죽음과 함께 삶의 기반을 모두 잃었다. 남편 명의로 된 아파트는 빚을 정리하면서 팔아야 했고, 대출을 받느라 담보로 잡혔던 구미 친정집마저 은행에 넘어갔다.

민지 가족의 집은 교회다. 대구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빈 사택을 무료로 제공해줘 6년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하지만 엄마가 젊고 근로능력이 있어서 한 달에 나오는 정부 지원금은 30만원이 채 안 된다. 식당 설거지와 인근 원룸 청소를 하며 한 달에 50여만원을 버는 게 소득의 전부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버겁지만 수술은 미룰 수 없다. 민지는 이번 주에 양쪽 무릎에 핀 4개를 박아 안짱다리를 교정하는 수술을 앞두고 있다. "민지가 똑바로 걷는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어요." 항상 절뚝거리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엄마의 마지막 바람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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