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첫 여행의 추억은 대부분 '수학여행'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모 곁을 떠나도 된다는 인증을 확실히 받은데다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치곤 했다. 지금 중년의 나이라면 경주~설악산으로 이어지는 수학여행 단골 코스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처음으로 목도한 벅찬 경험이었다.
국내여행이 이럴진대 첫 해외여행은 어떠했겠는가. 몇십 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면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와 너무나 동떨어진 환경과 규모, 그리고 그들의 이질적인 삶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그리고 외화 유출을 막아야 한다며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치였다.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내려진 것은 1989년, 불과 20여 년 전이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기간 대한민국은 세계화에 성공했다. 국민들의 해외여행 '붐'이 성공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해외여행을 통해 국민이 성숙해지고 눈과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200여 년 전 독일의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괴테는 "새벽 3시에 칼스바트(현재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1년 9개월 동안이나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했다. 당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문학적 명성을 떨친 괴테가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이 점점 무뎌져 간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일상(日常)에서의 탈출, 그것이 바로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7월 마지막 주 9일 동안 해외 출국자가 49만 1천900여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미 이달 초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해외 노선 평균 예약률이 90%에 육박, 사실상 동난 상태라고 한다.
해외여행만큼 좋은 인생의 활력소가 없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 찜찜하다. 대한상의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여름휴가 국내에서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도 "서민 경제를 살리자"며 국내 휴가 여행을 권장했다. 게다가 일부 지역은 100년 만의 물난리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화합과 공존의 시대, 해외여행도 때에 따라 자제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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