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맛있게 먹기] 연극에도 '웰빙' 필요…장르 편중 벗어나 다양성 찾아야

입력 2011-07-28 13:52:50

관객'배우'희곡을 연극의 3대 요소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에 무대를 포함하면 연극의 4대 요소가 된다. 혹자는 희곡과 무대의 중요성을 바꿔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말을 들으면 왠지 어렵고 엄숙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사실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희곡에 나오는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가 없이 연극이 존재할 수 없듯이 이를 지켜보는 관객이 없다면 이는 마치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쓰는 일기가 문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연극이라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극장이라고 하는 무대가 없을 수는 있다. 또한 미리 정해진 희곡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과 배우가 없다면 이를 연극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관객과 배우는 연극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이 두 가지 중에서 배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연극이 아니라 배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 또한 역시 관객의 몫이듯이 연극에서 관객의 중요성은 몇 번을 말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연극의 3대 요소라고 말하는 이론적인 것과 달리 연극계에서 말하는 연극의 3대 요소는 따로 존재한다. 티켓'프로그램'포스터. 물론 농담 삼아 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 반영된 말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들을 잘 떠올려보면 결국 관객과 맞닿아 있다. 모두 관객을 위해 제작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연극의 여러 요소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관객을 빼놓고는 그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관객의 중요성이 제일 크다는 것이다. 한 편의 연극작품이 제작될 때의 과정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배우와 연출 등 모든 제작진들이 신경을 쓰는 것은 관객의 반응이다. 미리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며 좀 더 만족스러운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한다. 어쩌면 작품의 주제나 형식 등도 제작진이 아니라 관객이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사는 게 어렵고 삶이 팍팍해질 때면 웃음을 찾는 관객들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코미디 작품이 넘쳐나게 되는 것이 바로 연극 제작의 중심에 관객이 서 있다는 방증이다. 관객의 취향이 공연작품의 성향과 경향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이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정 형식의 공연이 유행처럼 번져 다양한 공연을 보고 싶은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은 어느 극장을 가도 코미디만 넘쳐나는 것은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연극제작진의 문제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연극의 소비자인 관객의 힘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극 제작진이 연극계를 끌어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관객이 연극계를 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먹고 싶은 것, 늘 먹는 것만 먹으며 편식하면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건강이 나빠지듯이 연극도 마찬가지다. 코미디라고 하는 특정 형식의 공연만 본다면 결코 이로울 게 없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웰빙이라고 해서 유기농, 날것 혹은 인공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음식을 찾고 있다. 이제는 연극에도 웰빙이 필요한 시점이다. 뮤지컬처럼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작품이나 그저 웃음만 유발하는 개그형태의 작품만을 찾을 게 아니라 진지한 고전작품이나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실험적인 작품을 찾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볼 때 우리의 정신도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웰빙을 위해서라도 관객이 가진 힘을 잘 이용했으면 좋겠다. 이제 더 늦어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진지한 고전이나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는 실험적인 작품을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치 천연기념물처럼 귀해졌다가 언젠가는 영원히 멸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건강한 소비자의 선택이 웰빙 음식문화를 이끈 것처럼 건강한 관객의 현명한 힘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관객인가 한 번쯤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수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연극제작진의 소신과 신념도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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