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서 31일까지
화가에게 한 획을 긋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년 이상 선을 긋고서야 '이제 비로소 선 긋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작가 김서규의 전시가 31일까지 봉산문화회관 1, 2전시실에서 열린다.
작가는 '선 긋기'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왔다. '선'에 대한 몰두는 어린 시절 접했던 서예의 영향과 동양화과에서의 대학 시절이 낳은 우연이자 필연이다.
2000년대 초 한지에 먹으로 선긋기에 몰두했던 작품들이 1전시실에 전시된다. 자세히 바라보면 짧고 가느다란 선들이 꿈틀대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깊은 먹색 사이로 산이 일어선다. 먹색 사이로 나뭇잎도 보이는 듯하고 햇살도 느껴진다.
"처음에는 우뚝 솟은 소나무, 앞산, 팔공산 등의 실경을 위주로 그렸어요. 그러다가 그냥 제목을 '산에서'라고 하기 시작했죠. 산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을 옮긴 겁니다."
그는 야산을 더 사랑한다. 그게 한국인의 정서라고 했다. "소나무, 바위 다 얽히고설켜서 오히려 잔잔한 느낌이 나는 야산의 이미지를 주로 즐겨 그려요."
그는 선 하나에 마음이 담기고 깊이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선의 의미가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책 중에서 17세기에 쓰여진 중국의 '석도화론'을 으뜸으로 친다. '태초에 법이 없었다. 그 법을 세우는 것이 일획(一劃)'이라는 것. 그 수묵의 정신성은 조선시대 문인화까지 면면히 이어져왔다.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유난히 한 획을 중시했어요. 과연 동양화에서 획을 긋는다는 의미를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지 찾다 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그동안 획에 대해 작가가 찾은 답은, '무섭고도 쉬운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1998년까지 채색화 중심으로 색채와 필선의 긴장감을 탐구해오다가 그 후 수묵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요즘 그는 수묵으로 꿈틀대는 선들을 캔버스에 확대해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낸다. 비로소 자유로워진 선들은 캔버스 위에서 흩날린다. 비칠 듯 말듯 깊이감을 간직한 선들은 오랫동안 선긋기를 통해 체득한 작가의 정신세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종구 큐레이터는 "수묵이 지닌 전통적 사색과 명상적 분위기를 맛볼 수 있으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작가의 노력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053)661-3081.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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