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젊은이여, 이 못된 저주를 깨뜨려라

입력 2011-07-26 07:55:02

장마가 그치자 불볕더위가 찾아온다. 바야흐로 휴가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많은 이들이 떠난다. 오지 여행을 비롯해 외국의 유명도시 혹은 종교적 체험을 하기 위해 순례기를 따라가는 이도 있고 예술가들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아니면 그곳에서 태어난 훌륭한 작가들의 흔적을 찾아서 여행 일정을 짠다.

필자도 며칠 후면 일본 후쿠오카로 한일교류전을 하러 간다. 이왕이면 전시와 함께 여러 동료들과 가면 그곳 작가들과 교류도 하고 그곳 미술관과 명물들도 구경하고 내 작품도 알리는 '꿩 먹고 알 먹는' 여행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화가로서 그냥 덤덤하게 버티고 있지만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미래생활의 불안과 창의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배할 때가 많았다.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십 년 후 만학도로 미술대학에 입학하였다. 화가로서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을 했으나 그 시절 화가에 대한 인식은 밥 빌어 먹는 환쟁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주위환경도 열악하여 누구 하나 조언해 주는 사람도 드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최소한 미대를 나와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갓 들어온 후배들과 대학생활을 재밌고 씩씩하게 보냈다.

학부시절은 후딱 지나가고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데 앞길이 막막했다. 고향으로 가야 하나? 직장을 구해야 하나?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몇 개월 쉬다가 작업실도 필요하고 작가로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용감하게 살아야 되니 우선 대학원 진학을 하기로 하고 언젠가 멋진 예술가 선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미술 인적 자원이 많고 예술의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큰 대구!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훈련을 무지막지하게 시키는 대구라는 도시에 한번 부딪혀 보자는 오기도 있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화가로서 살아남기로 했다. 직장을 가지는 것보다 한 우물을 파보자 하고 직업을 가져 월급을 받는 것은 이때까지 투자한 것의 이자밖에 안 된다는 엉뚱한 발상에 끝까지 그림을 그려 승부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좋은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뒷받침 역할도 컸지만 나의 무데뽀 정신과 뻔뻔스러움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예술가는 캄캄한 밤중에 난파 직전의 배에서 뛰어내린 승객같이 적막한 바다에서 죽을지 살지 모르게 아우성치는 심정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거라는 말도 들었고 예술가는 바른말 하는 백수와 같다고 한 은사는 말씀하셨다.

어디에 기웃거리지 말고 신념대로 나아가며 작가적 기질을 갖고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선의 풍선을 냉정하게 바늘 하나로 터트려가는 게 예술가 정신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삼십여 년 작가 활동을 해보니 아직 굶어 죽을 지경은 아니고 앞으로는 조금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인다. 젊은 예술가들이여, 무엇이 두려운가?

요즈음은 청년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많고 여러 기획 프로젝트와 아트페어, 국제적 경매 등 점점 열린 사회가 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기회도 많이 주어지고 있다. 내가 늘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준 힘의 예술이라는 책의 구절을 소개한다.

"젊은이들아! 우리가 살고 있는 도박과 약탈로서 조직화된 세계는 힘세고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몇 해 동안의 악몽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체의 붕괴의 씨앗들이 그 심장에 싹트고 있다. 나는 물질적인 뜻으로 말한다.

그 세계는 전체의 풍성함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 자체의 넘치는 번영을 전쟁과 파괴로 비참하게 만들었다.

자체의 꼭대기에 선 피라미드가 넘어지는 것과 같이 그 세계가 몰락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며 그 세계가 몰락했을 때 민중 아닌 그 무엇이 남겠느냐? 젊은이들아, 여기에 당신이 할일이 있다. 당신의 장래가 있다. 관습에 대한 겁먹은 봉사가 아니고 몇백만 번이나 되풀이된 옛날부터의 허위를 섬기는 것도 아니며 어리석은 행동이나 잔인하고 탐욕스런 원고를 끝없이 베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은 최면술에 걸린 사람 같아 헛되게도 싫증 나는 공식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아, 이 못된 저주를 깨뜨려라. 밖으로 나와서 새로이 밝아오는 인생을 만나 싸움터에서의 자기의 책임을 맡아라. 그래서 그 삶을 새로운 예술 속에 침투시켜라. 새 민중을 섬겨라. 이 민중은 네가 만드는 너 자신을 뜻한다. 이 말은 이 책이 바치는 마지막 말이다."(싱클레어-힘의 예술. 제111장에서)

정태경(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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