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남길까…'빚' 남길까 , 지자체 세계대회 행사 유치

입력 2011-07-16 08:00:00

전국의 모든 도시가 '세계'를 향해 달리고 있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2 여수세계박람회, 2014 인천아시안게임,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2018 평창동계올림픽 등은 그나마 시민들이 익숙하고도 굵직한 행사들이다. 지난해 열렸던 2010 상주세계대학생승마선수권대회, 올해 치러진 경주W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2013 대구세계에너지총회, 2015 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 등처럼 평범한 시민들에겐 그 이름조차도 낯선 경우도 상당수다.

지금껏 '유치'된 세계 이벤트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 하지만 지금도 많은 지자체들이 '세계'를 움켜쥐기 위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4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전북), 2017년 동아시아경기대회(제주'충북), 2020년 하계올림픽(부산) 등의 유치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여기에다 각종 회의와 비엔날레, 선수권대회까지 합치면 집계조차 힘든 상황이다.

정부와 지자체 모두 이런 '국제적 행사'에는 경제 유발 효과와 더불어 도시 브랜드 이미지 제고, 관광수입 증대, 일자리 창출 등의 이익이 굴러떨어질 것이라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너무 어마어마하다보니 '과연 믿을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일각에서는 지자체들이 면밀한 검증 없이 과시성 이벤트로 국제행사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국가와 지방 재정에 손실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도 터져나온다. 국제 행사, 과연 약인가 독인가?

◆왜 국제 행사 유치인가?

시민들에게 물었다. "2003년 있었던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나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20여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냉담했다. 냉소적이기까지 했다. "그거 시민이 낸 세금으로 벌이는 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 쇼' 아닙니까?"라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권기현(49) 씨는 "일시적인 지역 경기활성화 뒤에 따라오는 공황은 국민들이 감당하고 이득은 대기업이 가져가는 구조"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단순 치적 쌓기였다면 이렇게까지 전국의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기는 힘들었을 터. 사실 지자체가 각종 국제 행사 유치에 뛰어드는 이면에는 '지역 개발이라는 과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20여 명의 시민 중 찬성의 입장을 밝힌 단 한 명이었던 신호준(27) 씨는 "2003년 U대회 덕분에 칠곡지역 개발이 이뤄졌고, 월드컵을 통해 달구벌대로 정비가 진행될 수 있었다"며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역시 범어대로와 대구스타디움 연결도로 공사 및 대구미술관이 완성된 상태고 각종 네트워크 시설이 도시 전체적으로 잘 갖추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서울에서 지난해 대구로 내려왔다는 한 30대는 "대구에 와서 살아보니 이 많은 시민들이 대체 뭘 해서 먹고사나 싶을 정도로 경제 기반이 아무것도 없더라"며 "사실 국제 대회 유치를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오죽하면 이런 대회라도 하나 유치해 먹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겠냐는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도시 인프라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국제 대회가 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는 공무원들 역시 동의하는 바다. 국제 대회가 없다고 꼭 필요한 기반시설이 갖춰지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이벤트를 통해 시간이 상당 부분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 한 공무원은 "만약 대구시가 굵직한 세계 대회를 유치하지 않았다면 도로나 미술관 등의 기반 시설에 필요한 국비를 정부로부터 받아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행사라도 있어야 그나마 정부가 지역에 예산을 내려주니 이렇게 기를 쓰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정권에 따라 지역별 개발 예산이 천차만별인 지금 시점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는 하소연이다.

◆마구잡이 유치로 상처만 남기도

하지만 너도나도 경기 후의 결과는 고려하지 않은 채 국제 행사 유치전쟁에 뛰어들다보니 빚어내는 경제적 손실과, 역량 부족으로 대회를 제대로 치러내지 못해 발생하는 '이미지 훼손'도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올 초 열린 경주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유명 인사들의 경기 불참으로 초라한 대회로 전락한데다 참가국 149개 중 시리아와 케냐, 몽골 등 20여 개국의 국기가 모양과 색깔 등이 잘못 제작돼 걸리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세계적인 망신을 샀다.

상주시는 지난해 세계대학생승마선수권대회를 위해 승마장 건립 등에 247억원의 예산을 퍼부었지만, 대회 이후 승마장 운영과 관리 방안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작 선수 69명을 위한 승마장을 짓는데 들어간 수백억원의 예산도 문제지만, 말 사육과 시설관리를 위한 직원 인건비 등에 매년 5억여원의 운영비가 들어가야 할 상황인 것.

2002년 한일월드컵 역시 전국에 10개의 경기장이 새롭게 조성되는 과정에서 막대한 건설비와 사후관리 비용이 도마에 올랐다. 서울 상암경기장을 제외한 나머지 전국의 9개 경기장은 매년 40억~50억원 적자를 고스란히 세금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특히 대구월드컵경기장은 경기장 건설비 2천836억원 중 지방채로 조달한 1천855억원에 대해 2001년부터 2016년까지 해마다 100억~173억원씩 갚아 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처음 열렸던 전남 영암의 F1 코리아그랑프리국제대회 역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경기를 치른 결과 수익금이 180억원에 그쳐 당초 기대했던 예상수익의 4분의 1에 불과한 것. 이 때문에 차라리 지역에서는 '대회를 반납하자'는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대회를 반납할 때 따르는 벌금이 무려 400억원이지만, 강행했을 경우 예상 손실이 1천200억원이라는 주장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지자체들은 '세계'자만 붙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출혈경쟁까지도 불사하고 있다. 올해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ERA 세계장애인대회의 경우 지자체들이 대회 유치를 위해 앞다퉈 과도한 인센티브를 주최 측에 제안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부산은 10억원의 지원금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대회 예산 규모 16억원의 60%를 웃도는 수준이었으며, 함께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대구 역시 당초 3억원의 지원금에다 재활기기 전시회 경비 2억원에 대구엑스코 국제대회 지원금 5천만원을 추가로 제시했다. 가장 늦게 실사를 받은 인천도 당초 8억원의 지원금을 제안했다가 부산에 뒤지지 않는 금액으로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에서도 재정부담 골머리

1980년대 이후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거대 이벤트성 대회 자체의 흥행은 대부분 흑자였지만, 대회를 치른 해당 지역은 엄청난 재정부담으로 오랜 기간 부채에 시달려야 했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교수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은 바르셀로나시에 21억달러, 스페인 정부에 40억달러의 부채를 떠안겼다"며 "'짠물' 운영으로 유명했던 애틀란타올림픽은 기존 시설을 사용하며 신규 시설투자를 최소화했지만 애틀랜타시는 16억달러의 재정 지출을 감내해야 했다"고 밝혔다.

또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경우 유치 당시 집권당과 개최 당시의 집권당이 달라 약 70억유로(10조원)까지 치솟은 재정 부담을 놓고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정치쟁점화하면서 대회 개최 직전까지도 준비가 미비해 세계적인 뉴스가 되기도 했다.

나가노와 벤쿠버의 사례도 유명하다.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은 폐막 후 곧 경기침체로 빠져들었다. 나가노올림픽조직위는 대회가 끝난 뒤 2천800만달러의 흑자를 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수십억달러 적자를 봤다. 이 도시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해 개최지였던 벤쿠버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예산부족으로 IOC 지원을 받았고, 결국 100억달러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1, 2주 남짓에 불과한 행사를 위해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을 쏟아 부은 뒤, 사후 관리 문제와 이에 따른 비용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적자와 경기침체가 되풀이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차라리 대구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는 그나마 현명한 선택"이라고 했다. 단일 경기종목이다보니 기존 대구월드컵경기장(현 대구스타디움)을 리모델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 정 교수는 "스포츠 대회 유치를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시킬 수 있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추가 건설투자를 최소화하는 점"이라며 "그런 점에서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좋은 출발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열의만 모아진다면 충분히 성공적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2011 경주W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2010 제9회 세계한상대회(대구)

2010 상주세계대학생승마선수권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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